<12월의 시>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것을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이해인 수녀의 <12월의 시> 전문
<시인 소개>
이해인 수녀 시인(1945~ 본명 명숙)은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성의여자고등학교와 필리핀 세인트루이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를 취득함.
1970년 월간 《소년》 지에 「하늘」이란 시로 등단. 1976년 첫 시집 『민들레 영토』를 시작으로 시집, 에세이, 번역서 등 50여 권을 출간하며 독자의 사랑을 받는 수녀이자 시인이다.
법정 스님(1932~2010)과는 편지도 주고받는 절친한 사이.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해인 글방>에 살고 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1981년 새싹 문학상, 1985년 여성동아 대상, 1998년 부산 여성 문학상, 2007년 천상병 시 문학상, 2023년 제26회 가톨릭문학상 본상 등.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며, 일생을 러브레터처럼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과의 사이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법정 스님이 이해인 수녀님께 쓴 편지글 하나 소개하면,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 잡았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중략)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산에는 해 질 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니다. 《나무위키》 등 참조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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