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招魂)>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시인의 <초혼(招魂)> 전문.
<어설픈 해설>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나 넓구나. 붉은 해는 서산마루 끝에 걸렸는데, 나는 그대 이름을 부르노라.
선 채로 이 자리에서 돌이 되어 내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사슴의 무리도 슬피 우는구나.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는 그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오~ 내 사랑……, 순이여!
김소월(1902년~1934년. 본명, 정식)은 평안북도 구성시 출신으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한다. 재학 도중인 1915년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그의 친구 손녀인 홍단실과 결혼한다.
이후 서울의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하여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 전문부를 다니다가 관동대지진과 일본의 잔혹한 한국인 학살 사건이 발생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껴 1924년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함.
귀국한 소월은 고향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했으나, 자금난과 일제의 방해로 바로 문을 닫고,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해 살다가, 1934년 12월 24일 아까운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남.
그는 오산학교 스승 김억과 사상적 스승 조만식을 만나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한편 오산학교의 동기인 <오순>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교제하게 되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라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오순이는 19세의 나이로 시집을 갔으나 남편의 의처증에 견디지 못하고 22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 위 시는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초혼>은 망자의 혼(魂)을 부르는 의식이며, 1925년 12월 26일 『진달래꽃』에 수록된 시다. 『진달래꽃』은 소월이 생전에 출판한 유일한 시집이다.
서울 남산공원에 그의 시비가 있으며, 2019년 충북 증평군에 <소월·경암 문학관>이 건립되었는데, 이는 사) 새한국문학회 경암 이철호 이사장이 사재로 세웠다.
그의 무덤은 북한 고향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8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나무위키》 등 참조함. (끝)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 | 2023.10.27 |
---|---|
김동환의 <북청 물장수> (2) | 2023.10.26 |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 (3) | 2023.10.24 |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2) | 2023.10.17 |
민병도의 <낫은 풀을 이기지 못한다> (2) | 2023.10.1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