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아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北靑)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김동환 시인의 <북청 물장수> 전문.
<부뚜막 소금>
당당하게 국솥 옆에 놓여서/ 모든 조미료의 앞자리를 차지하고는/ 국물의 맛을 조절할/ 부뚜막 소금//
잘 끓는 국이/ 맛을 뽐내려 하면/ 그는 ‘잠간!’하고 소리치며/ 이렇게 말한다.//
곁에 있는 임도/ 품어야 맛이다.//
패러디 시인의 <부뚜막 소금> 전문.
<시인 소개>
김동환(1901년~1958년 추정. 호. 파인 巴人) 시인은 함북 경성보통학교, 경성 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일본 도쿄 도요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수학하다가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한다.
귀국 후 함북 청진에서 발행된 《북선일일신문》과 경성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1924년 시 「적성을 손가락질하며」 등단작이라 할 수 있다.
1925년 장편서사시 「국경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1920년대의 시문학의 총아로 도약한다. 그 후 「북청 물장수」, 「산 너머 남촌에는」, 「봄이 오면」과 수필 『나의 반도 산하』 등의 작품을 남겼다.
1929년 종합월간지 《삼천리》와 문학지 《삼천리문학》를 창간해 운영하였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을 위한 시를 발표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한다.
1945년 8·15광복과 정부 수립 후 이광수. 최남선 등과 함께 대표적 친일 인사로 꼽혀 1948년 1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3개월 남짓 재판을 받고 1949년 9월 작가를 은퇴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했고, 그 후 평안북도 철산군의 노동자수용소에 송치되었다가 1958년 3월 6일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첫 부인 신원혜(1903년~1993년)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재혼한 부인 최정희(1912년~1990년 소설가)와의 사이에는 김지원. 김채원 자매를 두었는데, 이들도 소설가다.
물장수는 일제 강점기 때 새벽이면 물지게를 지고 물을 파는 사람들인데,……,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물지게를 져 나르는,……, 그중에서 <북청 물장수>가 유명하다.
그래서 이런 시가 등장했다. 이런 일은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일인데,……, 특히 함경북도 북청 사람들이 단결력도 강하고 자녀 교육력도 왕성하여 다른 지역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고 전한다.
패러디 시 <부뚜막 소금>의 마지막 연, ‘곁에 있는 임도 품어야 맛이다.’ 절창이다. 《나무위키》 등 참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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