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
<권력으로 돈을 잡겠소>
권력으로 돈을 잡겠소/ 돈으로 권력을 잡겠소/ 정의가 없다 하면 언론을 통해서/ 적당히 플레이를 하지요//
권력 앞에 실패가 있겠소/ 법망은 교묘히 피하려오/ 혹 걸린다 하더라도/ 은닉한 재산이 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소//
KBS, MBC, SBS 카메라를 들이대면/ 뻔뻔스레 그냥 웃지요.//
패러디 시인의 <권력으로 돈을 잡겠소> 전문.
<차명으로 땅을 사겠소>
차명으로 땅을 사겠소/ 남이 뭐래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양심은 잠시 숨겨 두지요//
양심을 숨긴다 아주 없어질 리 있소/ 비난의 말은 공(空)으로 들으랴오/ 돈 벌고 싶은 사람 있으면/ 함께 투기해도 좋소//
잡혀서 추궁당하면/ 그냥 침묵하지요.//
패러디 시인의 <차명으로 땅을 사겠소> 전문
<시인 소개>
김상용(1902년~1951년. 호, 월파) 시인은 경기도 연천군 출신으로, 시인 겸 소설가 겸 번역문학가였고, 문학 평론가 겸 영문학자 겸 수필가였으며 대학교수였다.
1921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1928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에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로 문단에 등단. 이후 「대화」, 「포구」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이후 1931년 에드거 포의 「애너벨리」를 비롯하여 찰스 램, 존 키츠 등의 영미 작가들의 번역 작품을 출간하며 꾸준한 활동을 함. 1934년 《문학》지에 발표한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1938년에 수필 「우부우화」 등도 발표함.
1939년, 시집 『망향』, 소설집 『무궁화』 출간.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강원도지사로 임명되어 며칠 만에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학무 처장을 역임.
1946년 미국 보스턴 대학교에서 3년 동안 영문학 연구.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란했지만 1951년 6월 22일, 식중독으로 사망함.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의 망우산 공원 묘소.
위 시는 자연을 벗 삼아 소박하게 살아가려는 화자의 소망을 간결한 시어와 친절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한참갈이: 소를 이용하여 잠깐이면 갈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논밭.
패러디 시 <권력으로 돈을 잡겠소>와 <차명으로 땅을 사겠소>는 아직도 권모술수로 정치권을 좌지우지하고, 권력형 비리로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현 세태를 비꼬는 시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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