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 해(2002년)의 대선에서 내 고등학교 선배님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 동문으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취임식(2003년 2월 25일)에 나도 초청받아 참석하였다.
사실 그분과 나는 이전에 두 번의 만남이 더 있었다. 처음 만남은 그가 국회의원 시절(그때 마침 5공 청문회가 열렸으며 그는 청문회에서 스타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총동창회 자리였다. 그때는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자리여서 직접적인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 강렬하고 강단 있는 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경남지역본부 부본부장으로 근무할 때다. 그때는 대통령 후보 선출 한참 이전이었지만, 당내에서는 그 문제로 다소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마산·창원지역의 고등학교 동문 모임에서 그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였다. 마침 그 모임에는 창원에서 자동차 부품사업을 하는 그와 동기되는 선배님(주식회사 센터랄 강 회장)이 계셔서 그를 초청하였다. 그날 참석한 동문은 한 열대여섯 사람인 것으로 기억한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소위 상석이 아니었다. 따지자면 말석쯤 되는 자리였다. 모두 들 상석에 앉기를 권했으나 그는 그 자리에 앉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의 대화를 통하여 나는 그의 서민적인 인품을 다시 보았다.
그 후 그는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대통령 임기 중에, 국회에서 탄핵까지 당하는 고초를 거쳤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기사회생하여, 마침내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귀향하여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가 싶더니,
곧 검찰의 수사를 받고, 이후에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불행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국민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아무리 권력의 힘은 막강해도 결국은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는 법이다.
그 후 기념 사업회(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가 결성되어 운영 중이다. 비운의 대통령이 숨진 다음 날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나는 내가 은퇴한(2008년 말) 이후로는 가끔 일기를 쓰고 있다. 2009년 5월 24일 일기장을 소개한다.
-시간을 되돌려서 5월도 중반을 넘겼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 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망하였다.
그날 새벽(06시 40분)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부산대학교 양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생명을 건지지는 못했다. 수사를 받던 중이라는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자살한 근본적인 이유는 몰랐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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