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찜닭
학력고사를 한 달여 앞두고 내가 또 미친병이 도져/ 학교 안 가고 술 취해 드러누워 있을 때/ 나락 타작하던 아버지가 찜닭을 사 들고 자취방엘 왔다/
삼부자가 그눔의 학교 졸업장 하나 못 받으면 무슨 개망신이냐고/ 이거 먹고 내일은 꼭 학교 가라고, 맛있는 거라고/ 처음으로 약한 모습 보이던 밤//
일은 죽어라 하면서도 툭하면 집구석 때려 부수고 들어 먹던/ 처치 곤란의 아버지가 꼴도 보기 싫어서/ 나는 말없이 찜닭을 먹으며, 찜닭이 맞나 닭찜이 맞나./
소주나 한잔 더 했으면 좋겠네/ 생각하고 있었다 온 집안이 반대하던 시인 지망생/ 집이고 학교고 뭐고 확, 멀리멀리 탈출해버리고 싶었던,/
하지만 고작 찜닭에 발목 잡힌 어린 열아홉/ 아버지 경운기 몰고 칠십 리 길 돌아가자/ 나는 포기했던 확률·통계 단원을 다시 펼쳤다//
안동고등학교 1학년 중퇴생 아버지는 칠 년째 고향 앞산에 누웠고/ 2학년 중퇴생 형과, 그 밤 열심열심 찜닭 뜯던 누이는/ 민중으로 돌아가, 안동 찜닭으로 부산서 먹고 산다/
닭하고 무슨 원수가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업 축하하러 와 다시 찜닭 앞에 앉고 보니,/ 어느덧 삼십 년이 흘렀고나//
안동고등학교 33회 졸업생, 학교 너무 다녀 탈인 나는/ 누이가 익혀 낸 찜닭을 먹고 있지만/ 내가 삼십 년 전 그 밤으로 돌아가 있는 걸 식구들은 모를 것이다/
소주잔을 연거푸 비우고는 있지만/ 아직도 찜닭이 맞나 닭찜이 맞나 생각 중인 줄 모를 것이다/ 뭐가 맞니켜, 물으면 나의 귀신 아버지는 술에 젖어/ 횡설수설할 것이다, 그냥 맛있는 거라고,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어옛든 학교는 가야 한다고//
이영광 시인의 <안동 찜닭> 전문.
<어설픈 해설>
안동고등학교 1학년 중퇴생 아버지는 칠 년째 고향 앞산에 누워계시고, 2학년 중퇴생 형 과, 그 밤 열심히 찜닭 뜯던 누이는 민중으로 돌아가 안동 찜닭으로 부산에서 먹고 사는데,
닭하고 무슨 원수가 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 형 누이가 모두 닭하고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라, 개업 축하하러 가서 다시 찜닭 앞에 앉고 보니, 어느덧 삼십 년이 흘렀구나.
안동고등학교 33회 졸업생, 학교를 무시로 다니다가 말다가 한 나는, 누이가 익혀 낸 찜닭을 먹고 있지만, 내가 삼십 년 전 그 밤으로 돌아가 있는 걸 식구들은 모를 것이다.
학력고사를 한 달여 남겨두고 내가 미친병이 도져 학교도 안 가고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을 때, 나락 타작하던 아버지가 찜닭을 두 마리 사 들고 자취방으로 행차하셨다.
삼부자가 그놈의 졸업장 하나 못 받으면 무슨 개망신이냐고, 이것 먹고 꼭 학교 가서 졸업장 따라고, 내가 처음으로 약한 모습 보이던 그 밤에, 나는 말없이 찜닭을 먹으면서, 닭찜이 맞나 찜닭이 맞나 헛갈렸다.
온 집안이 반대하던 시인 지망생, 집이고 학교고 뭐고, 확, 멀리멀리 탈출해 버리고 싶은 그 시절, 아버지 경운기 몰고 칠십 리 길 돌아가자, 나는 포기했던 확률·통계 단원을 다시 펼쳤다.
오늘도 나는 소주잔을 연거푸 비우고 있지만, 아직도 찜닭이 맞나 닭찜이 맞나 생각 중인 줄 모를 것이다. 뭐가 맞나요, 물으면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술에 젖어, 횡설수설할 것이다.
이영광(1965년~ 현재) 시인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문예 중앙》에 「빙폭」 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
문예 중앙 신인문학상. 노작 문학상. 지훈상. 미당 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직선 위에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등, 산문집으로 『홀림 떨림 울림』이 있다. 2015년부터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교수로 재직 중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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