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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

시평

by 웅석봉1 2023. 9. 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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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

 

고구마여/ 고구마여/ 나는 이제 너를 먹는다/ 너는 여름 내내 땅속에서 감정의 농도를 조절하며/ 태양의 초대를 점잖게 거절했다/ 두더지들은 너의 우아한 기품에 놀라/ 치아를 하얗게 닦지 않고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도 넌 네 몸의 일부분만을 허락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온 존재로/ 내 앞에 너 자신을 드러냈다//

 

남자 고구마여/ 여자 고구마여/ 나는 두 손으로 너를 감싼다/ 네가 진흙 속에서 숨 쉬고 있을 때/ 세상은 따뜻했다/ 난 네가 없으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쌀과 빵만으로 목숨을 연명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슬픈 일/ 어떻게 네가 그 많은 벌레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돌투성이의 흙을 당분으로 바꾸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고구마여, 나는 너처럼 살고 싶다/ 삶에서 너처럼 오직 한 가지 대상만을 찾고 싶다/ 고구마여/ 우리가 외로울 때 먹었던 고구마여/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결국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나 내 앞에는 고구마가 있다/ 생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넌 말하는 듯하다//

 

모습은 바뀌어도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우리 모두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고/ 그렇다, 난 모든 길들을 다 따라가 보진 않았다/ 모든 사물에 다 귀 기울이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감히 대지의 신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고구마여, 너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희망은 나의 것이라고.//

 

류시화 시인의 <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 전문.

 

<새우깡에게 바치는 노래>

 

새우깡이여/ 새우깡이여/ 나는 이제 너를 먹는다/ 너는 알맞게/ 고소한 맛과 짠맛의 농도를 조절하며/ 자극적인 맛을 점잖게 거절했다/ 나는 너의 겸손한 맛의 기품에 놀라/ 자꾸만 손이 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넌 네 몸의 전무를 허락하고/ 이제는 빈 봉지가 된 존재로/ 내 앞에 다시 여운으로 남는다//

 

새우깡이여/ 새우깡이여/ 나는 빈 봉지를 거꾸로 흔들어본다/ 네가 봉지 안에서/ 새큰새큰 잠자고 있을 때//

 

나의 사랑은 풍요로웠다/ 난 네가 없으면/ 무료한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아이스크림과 초콜릿만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슬픈 일//

 

어떻게 네가 그 많은 맛들을 물리치고/ 겸손한 새우 맛을 내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새우깡이여/ 새우깡이여/ 내가 심심할 때 즐겨 먹는 새우깡이여/ 나는 너처럼 되고 싶다/ 네가 늘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처럼/ 나도 늘 다른 사람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사람들이 심심할 때 위안이 될 수 있는 나//

 

나는 그것을 너에게서 배운다/ 너무 달지도, 너무 짜지도, 너무 싱겁지도 않은/ 온유한 사랑의 맛을 낼 수 있는 나//

 

새우깡이여/ 새우깡이여/ 너는 온몸으로 나에게 말한다/ 사람들의 입맛은 까다로워도/ 사람들의 감정은 변덕스러워도/ 우리는 언제나 사랑의 맛을 내야 한다고/ 새우깡이여/ 새우깡이여/ 너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패러디 시인의 <새우깡에게 바치는 노래> 전문.

 

<시인 소개>

 

류시화(1958~현재. 본명 안재천) 시인은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였으며 대광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생활로 등단.

 

그 후 80~82년까지는 시운동지를 통해 50여 편의 시를 발표한 이후 활동을 중단하고, 대신 83년부터는 명상 서적 번역을 주력했다. 1988년부터 류시화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1991년 시집 그대가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시작으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마음 챙김의 시,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등과

 

여행기로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명상 서적으로 삶의 길 흰 구름의 길, 성자가 된 청소부, 티베트 사자의 서,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조화로운 삶,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등이 있다.

 

경희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최근에는 제주 서귀포 인근에서 감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고구마에게 바치는 노래>는 그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수록된 시다. 사람들은 앞뒤가 꽉 막히고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답답한 사람을 고구마라고 하지 않는가. 핫 핫 핫,

 

이 시를 읽고 고구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고구마는 섬유질과 무기질이 풍부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강력한 구황식품이라는 사실을……, 고구마와 찰떡궁합인 식품이 사과라고 하니, 같이 먹으면 좋으리.

또한 <새우깡에게 바치는 노래>도 찬찬히 음미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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