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신록>

<신록(新綠)>

 

어이 할이거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서정주 시인의 <신록(新綠)> 전문.

 

 

<낙선(落選)>

 

어이 할거나/ 아, 나는 낙선을 하였어라/ 단 한 표 차로 낙선을 하였어라//

 

추종하던 놈들은 이미 태도가 바뀌고/ 여의도 금뱃지의 꿈은/ 아직도 나를 휘몰아치는데//

 

흰 투표용지는 떨어져 내려/ 개표대 위로 펄펄펄 떨어져 내려/ 지금도 내 눈앞에 흩날리는데//

 

아, 나는 낙선을 하였어라/ 날려버린 선거자금은 찾지도 못할/ 억울한 낙선의 고배를 혼자서 마셨어라.//

 

패러디 시인의 <낙선(落選)>

 

<시인 소개>

 

서정주(1915년~2000년) 시인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으로 등단, 동아일보 문화부장.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을 거쳐 중앙대학교,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

 

시집으로 『화사집』, 『귀촉도』,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노래』, 『팔 할이 바람』, 『산 시』, 『늙은 떠돌이의 시』, 『80 소년 떠돌이의 시』 등이 있으며,

 

기행 시집 『서으로 가는 달처럼』, 자서전 『도깨비 난 마을 이야기』, 『천지 유정』을 비롯한 많은 저서가 있음. 한국문인협회 회장. 5·16 민족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서정주 시인은 시인으로서는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문학인의 정치적 중립이나 문인으로서의 사회 비판적인 자세에도 불합치한 행적을 여러 번 보여 큰 비난을 받았다.

 

우선 일제강점기에는 <다쓰시로 시즈오 達城靜雄>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하여 친일 활동(10편의 친일적 글을 남김)을 하였다고 전하고,

 

1949년 여름부터는 경무대에 출입하면서 <우남 이승만>이란 자서전을 쓰는데 헌신하였고,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전두환의 56세 생일을 맞아 축시를 지어 올렸고, 1987년 4월, 호헌 조치 때는 ‘위대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발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도 한민족임을 분명하고, 항일 정신에 투철하여, 항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30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모자로 구속되어 퇴학당한 경험도 있다.

 

그의 문학 작품은, 그를 능가할 언어 구사력이나 소재 선택 능력이, 현재도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평이다. 복원한 생가와 미당문학관 그리고 시인과 부인의 묘소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있다.

 

*위의 시 <신록>은 시인이 스무 살 전후에 우리 산하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아내 방옥숙(1920년~2000년) 여사를 만나고 지은 시라고 전한다.

 

시인도 젊은 시절 바람을 왜 안 피웠을까만, 이 시를 보면서 이 바람기를 극복했다는 후문이다. 패러디 시도 음미해 봄 직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