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祈禱)>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리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의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전문.
<노총각의 기도>
가을에는/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게 하소서/ 그것이 정이나 아니 되시면/ 강물이 거꾸로 흐르게 하소서//
가을에는/ 강물이 거꾸로 흐르게 하소서/ 그것이 정이나 아니 되시면/ 제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하소서//
가을에는/ 제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하소서/ 단풍이 물들 때를 기다려/ 우리들 사랑이 붉게 물들게 하시고//
그런 다음/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강물이 아래로 흐르는/ 그 불변의 진리는/ 그냥 그대로 유지하소서//
패러디 시인의 <노총각의 기도> 전문.
(시인 소개)
김현승(1913년~1975년) 시인은 평양에서 출생하여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제주. 광주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광주에서 숭일소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서 생활함.
교지 『숭실』에 시 「화산」을 싣고 일찍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으며, 1932년 숭실전문 문과에 입학한다. 그 시절 교수로 있던 양주동. 이효석의 강의를 들으며 습작에 몰두한다.
1934년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 온다 합니다」 등을 교지에 발표하는데, 그의 시를 스승인 양주동이 『동아일보』 문예란에 소개함으로써 등단의 관행인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고 문단에 나온다.
1935년 『조선시단』과 『동아일보』, 그리고 교지 『숭전』에 「묵상 수제(黙想數題)」, 「유리창」, 「철교」, 「이별의 시」 등을 발표함.
1936년 지병인 위장병이 재발하고, 숭실전문이 신사참배 거부로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졸업을 앞둔 채 광주로 돌아와 숭일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그 뒤 소학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그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에서 파면당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광주의 『호남신문사』에 잠시 적을 두었다가 모교인 숭일소학교의 교감으로 취임한다. 그 후 『경향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과 잡지에 「내일」, 「민성(民聲)」, 「창」, 「조국」, 「자화상」 같은 시편들을 발표한다.
1948년께는 서정주. 김동리. 조연현 등과 교유하며 문단 활동의 폭을 넓힌다. 1950년 「생명의 날」, 「가을 시첩(詩帖)」 등을 발표함.
1951년 4월에 조선대 부교수로 임용되고, 박흡. 장용건. 손철. 이동주 등과 계간지 『신문학』을 창간한다. 이때 당시 전쟁의 충격으로 피해 망상증과 분열증에 시달리며 광주로 내려온 서정주에게 자기 집 바깥채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조선대 부교수의 자리도 주선해준다.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이 되고 제1회 <전라남도문학상>을 수상하고, 1957년 첫 시집 『김현승의 시초(詩抄)』을 발간함.
1963년 두 번째 시집 『옹호자의 노래』, 1968년 세 번째 시집 『견고한 고독』, 1970년 네 번째 시집 『절대 고독』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과 숭전대 문리대 학장을 역임.
1973년 『김현승시전집』을 펴내고 <서울시문화상>을 받는다. 같은 해 3월 하순, 차남의 결혼식을 치르고 나오면서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이후 사경을 헤매다가 1975년 5월 예순두 살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한다. 광주 <무등산도립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위의 시 마지막 연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는 노년기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린 시인 자신의 절대 고독의 상징이겠고, 패러디 시도 음미해 보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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