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찜
심신 관리를 제대로 못해/ 몸이 쇠약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구나 나는 걷기를 남달리 좋아하였건만/ 요즘은 겨우 집안에서도 지팡이 짚고/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이 고작이니……//
살맛이 안 난다. 입이 써서 밥맛도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나네./ 학교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손수 쪄주신 통감자 한 개, 옥수수 두 개라도/ 걸신이 들린 듯 순식간에 먹었거늘.//
하늘나라에서 늙은 홀 아들 꼴 못 보겠다며/ 홀연 어머니 내 앞에 오신다면/ 무슨 반찬 해주실까? 무나물, 계란부침,/ 그런 슴슴한 것들도 좋겠지만, 혹 장산적,/ 또는 북어찜이라도 해주지 않으실까?//
장산적은 손이 가는 고급 반찬이고/ 그렇다 북어찜, 아들 입맛 돋우는 데엔/ 오히려 그게 더 좋을지 몰라./ 좀 짭쪼름하기는 해도 어머니 손맛에/ 먹으면 침이 돌고, 정신이 번쩍 나는.//
박희진 시인의 <북어찜> 전문.
<어설픈 해설>
요즘은 겨우 집안에서도 지팡이 짚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칠순까지만 해도 걷기를 다람쥐처럼 했다 만, 여든이 넘으니 기력이 떨어지더라.
지팡이 없으면 꼼짝하기도 귀찮고, 입이 써서 밥맛도 없으니……, 그러니 살맛이 나겠는가, 이럴 때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그 손맛이 간절하더라.
학교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님이 손주 쪄주신 통감자 한 개, 옥수수 두 개를,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는데……,
하늘나라에서 늙은 홀 아들을 내려다보시다가, 홀연 어머님이 내 앞에 내려오신다면, 무슨 반찬 해주실까? 무나물. 계란찜 그런 삼삼한 것도 좋지만, 쇠고기 장산적이나 북어찜이라도 해주실까나?
그렇다 북어찜, 아들 입맛 돋우는 것으로 최고라, 좀은 짭조름하기는 해도 우리 어머니 손맛에, 먹으면 침이 돌고, 정신까지 번쩍 나더라.
장산적이 더 고급 반찬이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북어찜이 더 좋더라. 돌아가신 어머님이 다시 나에게 오신다면, 어머님 손잡고, 손에 손잡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자랑하리라.
박희진(1931년~2015년) 시인은 경기도 연천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5년 《문학예술》에 시 「무제」로 등단, 동성고등학교 교사로 쉰세 살까지 근무함.
시집으로 『실내악』, 『청동시대』, 『미소하는 침묵』, 『빛과 어둠의 사이』, 『서울의 하늘 아래』, 『가슴 속의 시냇물』, 『사행시 백삼십사 편』, 『가슴속의 시냇물』, 『아이오와에서 꿈에』, 『라일락 속의 연인들』,
『시인아 너는 선지자 되라』, 『꿈꾸는 빛 바다』, 『바다, 만세 바다』, 『산화가』, 『북한산 진달래』, 『사행시 삼백수』, 『연꽃 속의 부처님』, 『몰운대의 소나무』, 『한 방울의 만남』, 『박희진 일행 시 칠백수』, 『화랑 영가』, 『동강 십이 경』, 『하늘·땅·사람』, 『박희진 세계 기행 시집』 등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한국시협상. 상화시인상 등을 수상함.
하얀 백발에 흰 구레나룻 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데, 그 모습이 흡사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나 영화 007의 <숀 코너리>를 연상케 한다.
그는 스스로 시 낭송 운동의 대부라고 자평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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