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박주택의 <어리굴젓>

시평

by 웅석봉1 2023. 9. 11. 06:47

본문

어리굴젓

 

간월도 바닷물이 섬을 이었다 끓었다 하는 동안/ 굴은 굴대로 자신의 목숨을 안으로 삭혀 향을 품었을 것인데/ 바위도 간월암 추녀 끝을 지나는 구름에 몸을 내주며/ 일생을 써 내려갔을 것인데//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부석사 지나 간월도/ 그곳에는 갈매기가 내려앉아 마치 바다를 양 날개로 떠미는 것 같고/ 생이란 생을 가볍게 떠미는 것 같고/ 햇볕으로 구름으로 풍랑으로 달빛에 절여/ 굴은 싱싱하도록 녹진거리기도 하는데//

 

벌겋게 깻잎에 받쳐 올라온 어리굴젓/ 밥상 앞 고이는 침을 삼키며 젓가락을 들 때/ 고인 침과 함께 길게 빼문 혀 위에 얹히는 어리굴젓/ 하얀 쌀밥에 섞어 우물거리며 문득 밖을 바라보는 순간//

 

삭힌 것들이 주는 시큼하고도 달달한 것은/ 한사코 갯마을 노인들을 닮아 있다/ 소설 몇 권을 녹인 주름을 닮아 있다//

 

박주택 시인의 <어리굴젓> 전문.

 

<어설픈 해설>

 

하얀 쌀밥에 어리굴젓을 우물거리며 문득 밖을 바라보는 순간, 삭힌 것들이 주는 시큼하고도 매콤하고도 칼칼한 그 촉감이 이곳 간월도 갯마을 노인들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나.

 

갯마을 노인들의 얼굴 주름에는 이미 벌써 소설 몇 권은 족히 쓰고도 남을 얼굴들이라나. 간월도 바닷물이 섬을 이었다 끊었다 하는 동안에 굴은 굴대로 그들의 목숨을 안으로 삭히며 향을 품었다나,

 

햇볕으로 구름으로 풍랑으로 달빛에 절여, 굴은 그렇게 싱싱하도록 녹진 거리기도 하는데, 벌건 고춧가루를 무쳐 깻잎에 받쳐 내 입안으로 들어오는 어리굴젓이라나,

 

밥상 앞에 고이는 침을 삼키고서 젓가락을 들 때는, 고인 침과 함께 빼문 혀 위에 얹히는 어리굴젓이라나,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부석사 지나서 간월도, 그곳에는 오늘도 갈매기가 내려앉아 마치 바다를 양 날개로 떠미는 형상으로 날고 있다나,

 

생이란 생을 가볍게 떠미는 것 같은, 바위도 간월암 추녀 끝을 지나는 구름 따라 몸을 내주며 일생을 살고 있다나. 이것이 임금님께 진상하던 그 어리굴젓이라나, 그렇다나……,

 

박주택(1959~현재) 시인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86경향신문신춘문예 꿈의 이동 건축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임.

 

시집으로 꿈의 이동 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시간의 동공,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감촉, 시론 집으로 낙원 회복의 꿈과 민주 정서의 복원, 평론집으로 반성과 성찰, 붉은 시간의 영혼, 현대 시의 사유 구조등이 있다.

 

편운문학상. 경희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

 

'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희진의 <북어찜>  (1) 2023.09.13
박목월의 <나그네 등>  (1) 2023.09.12
윤동주의 <서시>  (1) 2023.09.10
박종국의 <순대>  (1) 2023.09.09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  (1) 2023.09.08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