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시인의 <폭포> 전문
<어설픈 해설>
폭포가 무엇이던가! 폭포수 아래에 가 보시라. 무서운 기백으로 떨어지는 그 물줄기를 보라. 간담이 서늘하더라.
폭포는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사시사철 주야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한 자리에 올곧게 서서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더라.
폭포는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어도 언제나 곧은 자세로 곧은 소리를 내며 곧은 소리를 부르나니 ……, 무서운 기색도 없이……,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르나니,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조차 마음에 두지 않고, 부정적인 현실에 안주하는 소시민적이고 안이한 삶의 태도를 꾸짖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지나니……,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고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르는 것처럼, 시인의 곧은 시도 또 다른 곧은 시를 부르는 것처럼, 이 세상은 또 다른 곧은 소리가 있기를 기대하나니……,
김수영(1921~1968)은 서울에서 태어나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동경상대 전문부에 입학했으나 1943년 학병징집을 피해 귀국한다.
이듬해 가족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여 잠시 교편생활(영어 교사)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 서울로 돌아와서 연희대 영문과 4학년에 편입했으나 곧 중퇴한다.
1945년 《예술 부락》에 詩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여 등단하였으며, 1949년 김경린. 박인환. 임호권. 양병식 등과 함께 신시론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아메리카 타임지>, <공자의 생활난>을 발표함.
1950년 다섯 살 연하인 김현경과 결혼하였으며, 한국전쟁 중에 미처 피난하지 못해 북한군에 징집, 포로가 되었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고(1952년), 그곳에서 병원장 통역을 하였으며, 석방 후에는 미8군 통역, 선린상고 영어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55년 1·4후퇴 때 수원으로 피난 가 있던 가족과 합류, 서울특별시 성북동으로 이사. 평화 신문사 문화부 차장으로 잠깐 (6개월간) 근무하고, 다음 해 마포구 구수동으로 이사, 번역을 주로 하며 자택에서 부업으로 양계를 침.
1960~1968년 사이에 서라벌예대. 서울대. 이대. 연대 등에 특강으로 생활하다가 1968년 6월 15일 상오 11시 10분께 마포구 구수동 앞길에서 버스에 치여 다음날 사망함. 그때 시인은 한창 일할 나이인 마흔여섯 살이었다. 그는 곡절 많고 한 많은 불우한 삶을 살았다.
민음사에서는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81년에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였으며, 제1회 수상자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시집을 낸 정희성(1945년~경남 창원 출신) 시인이었다. 200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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