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볶음
중학생 시절 내 도시락에는/ 김치나 계란말이 대신/ 보리밥에 멸치뿐이었지./ 겨울이면 교실 난로 위엔 도시락이 쌓였지./ 교실은 김치 익는 냄새가 진동했지.//
나는 도시락을 난로 위에 안 올렸지./ 보리밥이 누룽지 되는 것도 싫고/ 난로 위에서 익은 김치는 더 싫어서/ 그냥 뜨거운 보리차에 찬밥을 말아/ 볶은 멸치 씹는 맛으로 먹었지.//
살짝 볶은 작은 멸치에 송송 썬 고추와/ 마늘, 생강, 간장, 물엿 등을 넣고/ 참기름에 한 번 더 볶은 다음/ 그 위에 깨를 뿌린 멸치볶음,/ 씹을수록 우러나는 고소한 맛이라니!//
요리하기 쉽고 영양가도 높아/ 수십 년 내 약골의 몸을 지탱해 준/ 우리 집의 단골 밑반찬 멸치볶음,/ 이제는 내 술 안주상까지 차지한 걸 보면/ 멸치는 전생에 내 술친구 아니었을까.//
김형영 시인의 <멸치볶음> 전문.
<어설픈 해설>
멸치가 칼슘이 풍부하여 뼈 건강에 특효약이라는 의견에는 이론이 없을듯하다. 그런데 이놈 멸치를 어떻게 정리(몸통의 분해)하느냐는 이론이 있을 법하다.
멸치는 우선 대가리와 몸통을 분리하더라. 그다음에 몸통을 두 쪽으로 갈라서 창자를 제거한다. 이때 똥도 함께 제거한다. 그다음에 꼬리도 제거한다. 그런 연후에 창자와 똥과 꼬리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대가리는 다시 국물에 사용하더라.
이것이 종래의 내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게 말장 황이란 걸 깨우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대가리와 창자와 똥과 꼬리가 진짜라는 사실을……, 진짜를 버리는 우를 범한 한심한 짓을 한 내가 한심스럽다.
강조하지만 멸치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물고기다. 멸치는 싱싱한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는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플랑크톤은 약이다. 그래서 멸치볶음은 통째로 볶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
멸치요리는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리라. 일반적으로 작은 멸치는 볶음으로, 중간 멸치는 국물용으로, 크고 살아있는 놈은 회로 먹는다. 멸치회는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별미다. 특히 통멸치를 약한 불에 살짝 구어 초고추장이나 마요네즈에 찍으면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더라.
김형영 시인(1945년~2021년)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6년 《문학춘추》로 등단. 1967년 문공부 신인 예술상 당선.
1970년부터 30년간 월간 《샘터》 사에 근무함. 그 후 ‘조혈모세포 성장 기능 저하증’이라는 빈혈과 혈소판이 감소하는 병으로 사망함.
시집으로 『침묵의 무늬』, 『모기들은 혼자서 소리를 친다』, 『다른 하늘이 열릴 때』,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 『새벽달처럼』, 『홀로 울게 하소서』, 『낮은 수평선』, 『나무 안에서』, 『땅을 여는 꽃들』, 『화살 시편』 등과,
시선집으로 『내가 당신을 얼마나 꿈꾸었으면』,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가톨릭문학상. 육사시문학상. 구상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신석초문학상 등을 수상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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