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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의 <돼지갈비>

시평

by 웅석봉1 2023. 8. 2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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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갈비

 

해저물녘 버스 정류장/ 예닐곱 발짝쯤에서 멈춘 구두 앞에서/ 느닷없이 터져버린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차가운 손목을 잡고서/ 연탄 화덕의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가셨다/ 간유리 너머로 희끗희끗 내리기 시작한 눈//

 

간신히 버틴 허기처럼 지글지글 타들어 가는 저녁/ 어금니로 씹어 혀끝으로 녹여 먹는 갈비살처럼/ 불화 不和는 금세 달짝지근해졌다//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눈발과 발자국의 틈새/ 아버지 옆구리에 매달려 단둘이 누운 길가방/ 애돼지처럼 베갯머리까지 좇아온 다디단 허기//

 

어머니는 사흘이 지나서야 돌아오셨다//

 

김병호 시인의 <돼지갈비> 전문.

 

 

<어설픈 해설>

 

엄마가 집을 나간 첫날 저녁 해 질 무렵에,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나는 엄마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면서 울고 있었다. 도망간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혹시 잘못될까 걱정도 태산이었다.

 

그때 나를 찾아 나온 아버지가 날 보자마자 그 억센 손으로 나의 손목을 잡고서는 연탄 화덕이 지글지글한 돼지갈빗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희끗희끗 내리는 눈을 보면서, 간신히 버틴 허기처럼 지글지글 타들어 가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어금니로 씹어 혀끝으로 녹여 먹는 갈비처럼 아버지와의 불화는 금세 달짝지근히 녹는다.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눈발과 발자국처럼, 아버지의 옆구리에 매달린 채 단둘이서 길가의 우리 집에서 나는 아기 돼지, 아버지는 어미 돼지처럼, 이틀을 지내면서. 화해를 다져 갔다.

 

그랬더니 엄마는 사흘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엄마는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김병호 시인(1971~현재)은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를 졸업하고 1997월간문학신인상으로 등단. 2003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작 <징검돌이 별자리처럼 빛날 때>로 등단. 협성대학교 교수로 재직.

 

시집으로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백핸드 발리.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윤동주 문학 대상 젊은 작가상. 동천 문학상 등 수상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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