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어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전문.
<머리칼이 빠지면>
지금 그 숱 많던 머리는 벗겨졌지만/ 덥수룩한 수염은/ 내 얼굴에 그대로 있네//
빗이 있어도, 무스가 있어도/ 나는/ 서러운 대머리/ 가르마를 달 수가 없지//
머리칼이 빠지면 누구나 대머리가 되는 것/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칼 반짝이는 앞이마//
그 머리 위에/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향수를 뿌려서/ 빛나는 광채가 눈부시다 해도//
지금 그 준수하던 외모는 간 데가 없고/ 그 숱 많던 머리칼은 사진 속에만 있네/ 빛바랜 사진 속에만 있네//
패러디 시인의 <머리칼이 빠지면> 전문.
<시인 소개>
박인환(1926~1956) 시인은 50년대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시인은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하여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강요로 평양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함.
이후 서울로 내려와 종로에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함.
1949년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 기수가 되었다.
1955년 『박인환 시선집』을 간행하였고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忌日) 때 3일간의 폭음으로 급성 알콜 중독성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요절함(향년 29세)
묘소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76년 『목마와 숙녀』가 유고 시집으로 간행됨.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폿집 <은성>에서 극작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이 만나서, 같이 술을 마시는 가운데 즉석에서 작사하고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고 전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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