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풀> 전문.
<몸>
몸이 눕는다/ 욕정을 몰아오는 감성에 나부껴/ 옷을 벗고 드디어 눕는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눕는다//
몸이 눕는다/ 사랑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사랑보다도 더 빨리 벗고/ 사랑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다/ 애정의 성숙을 뒤로하고 몸이 눕는다/ 거리낌 없이 눕는다//
사랑보다 먼저 누웠다가/ 사랑보다 먼저 일어나고/ 사랑보다 먼저 벗었다가/ 사랑보다 먼저 입는다/ 애정의 성숙을 뒤로하고 몸이 눕는다//
패러디 시인의 <몸> 전문.
<시인 소개>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시인은 1968년 6월 16일 사망하는데 이 시는 1968년 5월 29일 지었다)이며, <풀>은 연약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민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김수영(1921~1968)은 서울에서 태어나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동경상대 전문부에 입학했으나 1943년 학병징집을 피해 귀국한다.
이듬해 가족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여 잠시 교편생활(영어 교사)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 서울로 돌아와서 연희대 영문과 4학년에 편입했으나 중퇴한다.
1945년 《예술 부락》에 詩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여 등단하였으며, 1949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신시론 동인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아메리카 타임지>, <공자의 생활난>을 발표함.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미처 피난하지 못해 북한군에 징집, 포로가 되었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고(1952년), 그곳에서 병원장 통역을 하였으며, 석방 후에는 미8군 통역, 선린상고 영어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어에 능통하였고, 귀가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때 시인은 한창 일할 나이인 46세였다. 그는 곡절 많고 한 많은 불우한 삶을 살았다.
민음사에서는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81년에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1981년 제1회 수상자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집을 낸 정희성 시인이었다. 200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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