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놓은/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전문.
<도라지는 가라>
도라지는 가라/ 뿌리 굵은 산삼만 남고/ 도라지는 가라// 도라지는 가라/ 백년근 산삼만 남고/ 도라지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삼년근 도라지는 가라/ 사슴 놀던 자리에서 캔 백년근 산삼만이/ 무병장수를 위하여/ 향기를 풍기며 먹혀 질지니//
도라지는 가라/ 그 옛날 진시황에게 바쳐졌던/ 백년근 산삼만 남고/ 그 모오든 도라지는 가라.//
패러디 시인의 <도라지는 가라> 전문.
<시인 소개>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동학 농민 혁명과 4·19혁명의 순수성만 남기고, 허위. 비리. 불의 등 모든 부정적인 존재를 껍데기에 비유하였고, 쇠붙이는 전쟁. 외세. 군사독재. 폭력 등 민족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비유함.
*패러디 시 <도라지는 가라>는 도라지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다. 아무렴 패러디이니 이해는 간다만, 도라지도 산삼만큼은 못해도 약효는 좋다.
신동엽 시인(1930년~1969년)은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전주 사범대학을 중퇴하고 1953년 단국대학교를 졸업, 1957년 인병선(1935~현재) 과 결혼하였고,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 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폐결핵으로 교직을 그만두고 시에 집중한다.
1960년 다행히 건강이 회복되어, 서울로 올라와서 <교육평론사>에 취업한다. 그해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를 기리기 위하여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를 창작했다.
1961년에 명성 여고 야간 교사로 취직하여 안정적 생활을 하였으며 1963년 시집 『아사녀』를, 1967년에 4,800여 행에 이르는 장편 서사시『금강』을 발표한다.
그러나 1969년 지병인 간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전이되어, 아내와 2남 1녀를 남겨두고 4월 7일 만 38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한다. 1980년 유고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발간.
*날 선 시인은 자기만의 풍경을 그린다. 그래서 시는 불친절하더라. 2003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2013년에 부여읍 내, 시인의 생가 뒤에 신동엽 문학관이 개관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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