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
휴일 오후,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뜬금없이 삼합이 먹고/ 싶단다/ 몇 해 전 진외갓집 할머니 팔순 상에서 처음 봤을 삼합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 안 가득 넣고 우걱이던 낯익은 식욕//
유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나서면/ 으레 들르던 지방도시 변두리 허름한 대폿집/ 낡은 탁자 위에 놓은 삼합과 찌그러진 탁배기 주전자/
요걸 먹을 줄 알아야 여그 사람인 것이여/ 잔치에 이것이 없음 잔치가 아니제/ 삭은 홍어의 톡 쏘는 암모니아향 입 안에 가득 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 고이면/ 아야, 매운 기운을 코로 뿜어내야제/ 눈가를 쓸어주던 굵은 손마디/
그립지만 아득하기만 한 탁주에 젖은 낮고 탁한 목소리// 조금 이른 저녁 시간/ 술손의 발길은 아직 이른 시장 골목 남도식당/
군내 도는 묵은김치 잎사귀를 펴고/ 기름과 살이 섞인 삶은 돼지고기에 새우젓을 얹고/ 알싸하니 삭은 홍어를 올려놓고/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듯이/ 막걸리 잔을 약지손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아이와 나와 아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둘러앉은 삼자의 합을 곰곰이 생각한다/ 혀에서 혀로 전해진 보이지 않는 유전자를 물끄러미 쳐다/ 본다//
곽효환 시인의 <삼합> 전문.
<어설픈 해설>
“요걸 먹을 줄 알아야 여그 사람인 것이여” ……,이런 홍어에, 묵은김치에, 돼지고기가 바로 삼합이라, 이런 삼합을 먹을 줄 알아야 전라도 사람인 것이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잘 어울린다는 것이라.
그렇지요, 전라도에서는 삼합이 없으면 잔치가 안 되지요, 결혼 잔치는 물론이요, 회갑 잔치, 심지어 돌잔치에도 삼합이라, 삼합에 막걸리가 최고라지요. 삼합에 막걸리 한잔하면 기분이 최고라지요.
삼합은 돼지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돼지고기를 절약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는데, 요즘은 돼지고기는 흔해졌고 오히려 홍어가 귀한지라 그래서 귀한 홍어 대신에 조개나 문어가 등장했다지요.
그런데 홍어는 잘 삭혀야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이 나고, 그래서 입안 가득 차는 법인데, 요즘 그런 삼합이 귀하지요.
어느 날, 아버지와 나와 아들 녀석이 둘러앉아서 세 사람이 삼합을 먹는다? 상상하는데……,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어이 할꼬.
그러나 이왕지사 삼자가 만났으니, 혀에서 혀로 전해진 보이지 않는 유전자를 물끄러미 상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지요.
곽효환 시인(1967년~현재)은 전주에서 출생하여 건국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6년 세계일보 <벽화 속의 고양이3>을,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함.
대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 출강, 《대산문화》 주간. 《문학 나무》, 《우리 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 현재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시집으로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등. 저서로 『한국 근대 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 왔다』,
편저 『아버지 그리운 당신』,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이용악 시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청록 집-청록 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 그림 집』, 『이용악 전집』, 『절반의 한국사』, 등
김건일 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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