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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의 <귀천>

시평

by 웅석봉1 2023. 8. 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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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전문.

 

 

귀부(歸富)

 

나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리라/ 명예, 사랑, 권력 모두 얻는/ 존경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리라/ 오로지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온다 해도//

 

나 최첨단 의술 모두 동원해/ 끝까지 버티며 반항하며/ 돈의 위력을 보여주리라.//

 

패러디 시인의 <귀부(歸富)> 전문.

 

<시인 소개>

 

천상병(1930~1993) 시인은 일본 히메지(姬路) 시에서 태어나 일본과 한국을 오 가며 살았고, 1937년 아버지 고향인 경남 창원의 <진동 공립 보통소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다니다가,

 

1940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간사이에서 소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치바현에 있던 아와(案房) 중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던 중에 광복을 맞았다.

 

19458, 부모와 함께 귀국, 창원에 정착하여 마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1949(당시 천상병은 5학년이었다) 그의 시 <공상 空想>죽순11집에 추천으로 실리면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그때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그의 다른 작품 <강물>문예지에 실렸다. 당시 담임교사가 바로 김춘수이었다.

 

*담임교사는 나무 키위 천상병에는 유치환으로, 마산중학교 홈페이지에는 김춘수로 실려 있어 서로 맞지 않으나 결론은 김춘수가 옳다고 본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통역관으로 6개월 동안 근무하기도 했다.

 

전란 와중이었던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송영택. 김재섭 등과 동인지인 처녀지를 발간했고, 1952문예지에 시 <갈매기>가 추천되어 시인으로 정식 등단함.

 

1953문예지에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 <사실의 한계> 등의 평론을 발표하는 등 시문학뿐 아니라 평론 방면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1954년 서울대학교 상대 4학년 1학기 때 중퇴한다. 이후 1956현대문학지에 글을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이 있었고, 외국 서적도 몇 권 번역하기도 하였다.

 

1964년에는 김현옥 당시 부산시장의 공보실장으로 2년간 근무하였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직이었다.

 

1960년대는 주로 서울에서 살면서 일정한 거쳐도 없이 여인숙을 전전하면서 명동 거리를 드나들며 또래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며 다녔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술 중에서도 막걸리를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어울린 친구는 김관식. 이현우 등 이었다.

 

1967년 천상병은 독일 동()베를린 공작단 사건, 일명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70년 절친인 김관식이 사망하자 시 <김관식의 입관>을 발표하기도 한다. 또한, 그해에 그의 대표작 <귀천>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되었다.

 

1971년 그는 행려자.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이후 그의 경력을 생략함. (이상 나무 위키등 인터넷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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