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뺌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전문.
<달팽이>
저것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손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달팽이는 말없이 아파트 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슬 한 방울 없고, 풀 한 포기 없는/ 그것이 고난의 벽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때 달팽이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아파트 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내리쬐는 땡볕을 견디며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간다//
촉수가 마르고 가슴이 찢어져도/ 절대 희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오를 수 있고 없음의 높이를 가늠하지 않고/ 그저 한 뼘 앞만 바라보면서 저 높은 아파트 옥상을 향해/ 달팽이는 꼬물거리며 기어 올라간다//
그리고 마침내 동트는 아침 이끼 푸른 옥상을 차지하고 죽는다/ 이루었기에!//
패러디 시인은 <달팽이> 전문.
<시인 소개>
도종환 시인(1955년~현재. 국회의원)은 청주시 출신으로 충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충남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동인지 《분단 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 외 5편의 시를, 1985년 《실천문학》에서 <마늘밭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1985년 8월 부인 구수경 씨가 암으로 사망하자, 부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접시꽃 당신>이란 시를 발표하여,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시집으로 『접시꽃 당신』, 『지금 비록 너희 곁은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이 있고,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신동엽창작기금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사족을 달아보면
-그것이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결국 담쟁이는 그 벽을 넘는다.
-달팽이가 버튼을 누를 손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천천히 아파트의 벽을 기어오른다. 마침내 동트는 아침 이끼 푸른 옥상을 차지하고 마침내 죽는다. 이루었기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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