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김치>
푸들거리는 허리 긴 개성배추/ 굵은 소금으로 간하면/ 색을 빼고 힘을 빼/ 겨울 풍경 받아들이네/ 고기 삶는 냄새/
따스한 흉터처럼 흘러 다니는 밤/ 매운 고춧가루 양념에/ 귤이며 대추와 잣 호두/ 뜨거운 삶은 고기 썰어 얹으면/
보쌈김치 맵게 먹어/ 입술 붉은 아이들 살 오르는 소리/ 창밖은 흰 눈 펑펑 내리고/ 보쌈김치 씹으면/ 한겨울 어둠에 이빨 자국이 나네/
세상 끝 양귀비 꽃밭 무너지는 소리 나네/ 보쌈김치 먹는 밤엔/ 애벌레처럼 순해지고 싶었네/ 자다가도 푸릇푸릇/ 혀끝에 피가 도네/
서안나 시인의 <보쌈김치> 전문.
<어설픈 해설>
입술 붉은 아이들 살 오르는 소리, 창밖은 흰 눈 펑펑 터지는 소리, 보쌈김치 자근자근 씹는 소리, 한겨울 어둠 속에 이빨 자국 흐르는 소리, 도란도란 들려오네.
푸들거리는 허리 긴 개성배추에 굵은 소금 잘잘 쳐서 간 하는 소리, 색은 빼고 힘은 넣고 쑥덕거리는 소리, 겨울 풍경 맵싸하게 소곤대는 소리, 야들야들 들려오네.
고기 삶는 냄새로 코 푸는 소리, 따스한 흉터처럼 흘러 다니는 소리, 매운 고춧가루 양념으로 간을 치는 소리, 귤이며 대추며 잣이며 호두며 보쌈김치에 더하는 소리, 웅성웅성 들려오네.
한겨울 어둠에 이빨 부딪치는 소리, 세상 끝 양귀비 꽃밭 무너지는 소리, 보쌈김치 먹는 밤에 애벌레 지저귀는 소리, 자다가도 푸릇푸릇 혀끝에 피 도는 소리, 아삭아삭 들려오네.
그렇다고 보쌈김치가 어디 가냐고요. 그대로지요. 소리만 쫄깃쫄깃 들려오지요. ……, 쫄깃쫄깃 들려오네요.
서안나 시인은 제주도 출생으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새를 심었습니다』 등이 있으며,
평론집으로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등이고, 불교문화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시인의 대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분홍의 서사>
분홍 속엔 분홍이 없다// 흰색이 멀리 뻗은 손과/ 빨강이 내민 손// 나와 당신이/ 정원에서/ 늙은 정원사처럼/ 차츰 눈이 어두워지는// 사라지는 우리는// 분홍//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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