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세상살이 떫고 쓴맛을 단번에 돌려세운다/ 눈물이 핑 돌 만큼 얼얼한 혓바닥이다// 이토록 진땀 나는/ 땡볕처럼 타오르는/ 붉은 맛이 또 어디 있으랴//
잡티 한 점 섞이지 않은/ 태양 빛 알갱이들, 저의 빛깔대로/ 우리네 혈관을 틔워서// 한국인의 매운맛을 단단히 보여준다/ 탐스러운 빛깔들이/ 가을볕 고랑을 수놓아도/
아서라, 고추밭에서 함부로 손 내밀지 말아라// 불끈 솟는 힘을 감당치 못하리니/ 아릿한 단맛을 잊지 못하리니//
빻아지고 버무려지고 비벼지더니/ 온 식탁의 입맛을 후끈하게 달구는/ 찰 고추장, 이보다/ 깊고 맵고 진득한 입맛이 또 어디 있으랴//
오정국 시인의 <고추장> 전문.
<어설픈 해설>
고추밭에서 함부로 손 내밀지 말아라. 불끈 솟는 힘을 어찌 감당하려고, 아릿한 단맛은 또 어찌 잊으려고, 아서라, 사람들이여! ……,고추라고 청춘이 없는 줄 아느냐!
세상살이 떫고 쓴맛을 단숨에 돌려세우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얼얼한 혓바닥을, 이토록 진땀 나도록, 땡볕처럼 타오르도록, 아서라 사람들이여! ……,고추라고 눈물이 없는 줄 아느냐!
잡티 한 점 섞이지 않는, 태양 빛 알갱이들, 저들의 빛깔대로 우리들의 혈관을 틔워서, 한국인의 매운맛을 단단히 보여주려고, 아서라 사람들이여! ……,고추라고 의리가 없는 줄 아느냐!
빻아지고 버무려지고 비벼져서, 온 식탁의 입맛을 후끈하게 달구는 찰 고추장이여, 이보다 깊고 맵고 진득한 입맛이 또 어디 있으라고, 아서라 사람들이여! ……,고추라고 기백이 없는 줄 아느냐!
고추의 원산지를 아시나요, 저 남미의 열대지방이로소이다. 그러니 지적이고 강렬하고 정열적이고 저돌적이라고, 아서라 사람들이여! ……,고추라고 사랑이 없는 줄 아느냐!
고추장은 청국장도 아니라, 된장도 아니라, 막장도 아니라, 간장은 더더욱이 아니라. 고추장은 다만, 고추장일 뿐이라. 맵고 알싸할 뿐이라. 아서라 사람들이여!……,고추라도 근본이 없는 줄 아느냐!
오정국 시인(1956년~현재)은 경북 영양 출신으로 중앙대를 졸업하고 198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대한매일신문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장, 아리랑TV 기획위원. 한서대 문예창작과 교수 등 역임.
시집으로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 무덤』, 『내가 밀어낸 물결』, 『멀리서 오는 것들』, 『파묻힌 얼굴』, 『재의 얼굴로 지나가다』 등
평론집으로 『비극적 서사의 서정적 풍경』, 『시의 탄생, 설화의 재생』 등
전봉건문학상. 지훈상. 이형기문학상 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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