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장아찌
남도의 인심은 후해서 남정네들은 저녁이면/ 싸리나무 낮은 울타리 너머로 이웃들은 불러 모은다./ “어이, 막걸리나 한 잔 함세”/ “여보, 장아찌 후딱 내와요 잉”/
사내가 말하면 아내는 잽싸게 뒤란 장독대로 달려간다/ 꺼낸 오이장아찌는 잘 씻어 정구지에서/ 박자 맞추듯 도마에 써는 소리 정겹다./
막사발과 막걸리 주전자를 반상에 함께 올려/ 대청마루로 내가면 동네 남정네들은/ 어느덧 자리에 정좌해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남도의 유별난 기후가 실한 오이를 잘 자라게 해/ 집집의 장독대엔 큰 오이장아찌 장독이 따로 놓여 있다/ 오이 거둬들이는 일은 김장만큼이나 큰 일 년 농사,/
그것들은 절반으로 쪼개어져 소금에 알맞게 절인 뒤/ 소쿠리에 담아 장독대 위에 놓고 볕에 잘 말린 뒤/ 술 담그고 남은 술지게미를 넣은 항아리에/ 하나하나 박아 넣는다, 남은 오이들은/
고추장에 깊숙이 박았다가 꺼내 먹는 맛 맵싸하다./ 맵짠 아낙들의 손맛이 빚어내는 남도 장아찌/ 아삭아삭 씹는 소리마저 청량해라/
노향림 시인의 <오이장아찌> 전문.
<어설픈 해설>
고추장에 깊숙이 박았다가 꺼내 먹는 맛 맵싸하더라, 맵고 짠 아낙네들의 손맛이 빚어내는 남도 장아찌, 아삭아삭 씹는 소리마저 청량하더라. 오이장아찌 맛도 맵싸하고 청량하더라.
오이 거둬들이는 일은 김장만큼이나 큰일이요, 일 년 농사라, 그런 거둬들인 오이를 절반으로 쪼개어져 소금에 알맞게 절인 뒤, 소쿠리에 담아 장독대 위에 놓고 볕에 잘 말린 뒤,……, 잘 말려야, 제맛이 나지요, 잉.
술 담그고 남은 술지게미를 넣는 항아리에, 하나하나 박아 넣지요, 박아 넣어요, 잉. 그래서요 잉. 집집의 장독대엔 큰 오이장아찌 장독이 따로 놓여 있지요, 잉.
남도의 인심은 후해서 저녁이면, 싸리나무 낮은 울타리 너머로 이웃들을 불러 모아, “어이, 막걸리나 한 잔 함세” “여보, 장아찌 후딱 내와요 잉”, 내오세요, 잉.
남편이 말하면, 아내는 잽싸게 뒤란 장독대로 달려가 꺼낸 오이장아찌를 부엌에서 잘 썰어 막사발과 막걸리 주전자를 반상에 함께 올려, 대청마루로 내오면,
동네 남정네들은, 어느덧 자리에 정좌하여 맛있게 먹을 준비가 끝내지요, 잉. 오이장아찌에, 막사발에 막걸리라, 궁합이 찰떡이지요, 잉. 드디어 먹으면서…… 맛있지요, 잉. 소리까지 요란하지요, 잉.
노향림(1942~현재) 시인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불’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 『K읍 기행』, 『눈이 오지 않는 다리』,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푸른 편지』,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장. 이수문학상. 구상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인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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