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로
무오사화 그 무서운 죽음의 그늘에서/ 정승 정희량은 숲속으로 들어가 은거하면서/ 방짜 놋쇠 화로에 숯불을 지폈다네/ 사립문 열고 나가 채소를 뜯고/ 이 집 저 집에서 얻은 먹다 남은 음식 모아 끓이니/
입이 즐거운 음식/ 신선처럼 욕심 없이 먹는 맛/ 탕평책의 그 맛이었다네// 사화가 끝나고/ 대궐로 돌아온 정희량은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해/ 잔치에 신선로를 청했다네/
고기전 해삼 전복 은행 천엽 홍합 붕어―/ 숯불에 끓여도 그 맛이 아니라네/ 찌그러진 방짜 유기 안에 끓던 그 맛이 아니라네/ 신선처럼 먹던 그 맛도 아니라네/
최문자 시인의 <신선로> 전문.
<어설픈 해설>
무오사화라, 연산군 4년(1598년)에 일어난 조선 최초의 사화(士禍)라, 그때 사화가 넷 있었다네, 차례로 말하면,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라, ……, 무오사화 시절에.
정희량 (鄭希良1469년~1502년)이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그는 1492년(성종 23년)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1495년(연산군 1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 이듬해 예문관검열이 되고, 승문원의 권지부 정사에 임용되었다네.
1497년 예문관 대교로 있으면서 젊은 임금(연산)이 제왕의 도리에 벗어나는 행동을 보고 참지 못하고 상소를 올렸다네, 이때 임금이 마음을 바로잡아 할, 다섯 가지를 임금께 간하였고, 그때부터 연산의 눈 밖에 났다네.
다음 해 선무랑· 행 예문관 봉교로 재직하면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네, 이때, 무오사화가 일어나 난언(亂言)을 알고도, 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장(杖) 100, 유(流) 3,000리의 처벌을 받고, 의주로 유배되었다네,
1500년 5월에 김해로 이배(移配)되었는데, 유배지에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시로 엮은 책이 그의 호를 딴 『허암집(虛庵)』이라네. 그는 또 총명하고 차를 좋아하고 술도 좋아했다네. 그때, 먹어본 것이 다름 아닌 신선로라네,
귀양 이후에 대궐로 돌아와서 그때의 신선로 맛을 잊지 못해 다시 만들어서 해 먹어보니 그때의 맛이 아니라네. 그는 이후 사화에서 또 화를 당할 것이 우려되어, 가출하였다네. 이후 행방을 알 수가 없다고 전하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까운 선비님이여.
그렇다면, 신선로란 어떤 음식이던가. 신선처럼 먹는 음식이라, 가운데가 빈 둥근 놋그릇인 신선로에, 고기. 해산물. 채소. 버섯 등을 잘게 썰어서 넣고 소고기 육수를 부어서 끓이는 음식이라네,
밑바닥에 쇠고기. 무. 생선전(煎). 천엽전(千葉煎). 우간전(牛肝煎). 미나리 또는 파를 담고, 해삼. 전복을 넣고, 맨 위에 황백. 버섯. 홍고추. 완자. 깐 호두. 볶은 은행 등, 색조를 맞춰서 아름답게 돌려 담은 음식이라네,
사람은 때와 장소와 분위기와 입맛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는데, 어찌, 귀양살이 때와 고관일 때의 음식 맛이 같을 수가 있나요, 없겠지요.
최문자 시인(1943년~현재)은 서울 출신으로 성신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협성대학교 총장을 역임.
시집으로 『파의 목소리』,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울음소리 작아지다』, 『나무 고아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사과 사이사이 새』,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등이 있고,
시선집으로 『닿고 싶은 곳』, 산문집으로『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등이 있다.
한성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신석초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 이형기문학상. 한국서정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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