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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의 <설렁탕>

시평

by 웅석봉1 2023. 7. 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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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선농탕이라는 말이 어원이라는데 임금님이 봄이 와서 첫 쟁기질을 해 보이시는 날 구름처럼 모여들던 백성들이게 끓여 주던 고깃국, 그게 先農湯이라는데 그 말씀엔 오랜 시간이 묻어 있다

 

그 말씀 소리 나는 대로 불리운 설렁탕이라는 말씀에 더 정이 간다 더 맛이 있다 몸이 있는 말이다 우리 음식의 이름들에는 몸이 있다 半百年 里門 설렁탕집에서 소주 한 잔 곁들여 소금 넣고 숭숭 썰은 파 넣고 깍두기 넣고 깍두기 국물도 넣고 오늘도 놋숟갈을 꽂았다

 

100년 설렁탕집엔 오늘도 老果의 입맛들이 가득하다 간, 마나, 우설 등이 섞인 수육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 했다 소주 한 잔 쭈욱 비웠다

 

비도 추적거리고 근처 인사동 헌책방 通文館에서 어렵게 구한 조지훈 첫 시집 풀잎 斷章초간본을 옆에 놓고 설렁탕을 먹는다 조지훈 선생님을 생각한다 이 집엘 선생님 생전 처음 함께 왔었다 정말 맛있게 잡수셨다

 

특히 훌훌 국물을 바닥까지 비우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운수 좋은 날 빙허 현진건의 인력거꾼 같으셨다 이 집엘 오면 너나없이 서민이 된다 한 백성이 다 우리나라 음식엔 배고픔과 풍요가 모두 함께 있다

 

서민과 귀족이 함께 있다 임금님도 그 봄날 밭갈이 하시고서 설렁탕 한 뚝배기를 맛있게 비우셨다

 

정진규의 <설렁탕> 전문.

 

 

<어설픈 해설>

 

조선시댄가 삼국시댄가 고려시댄가 아마 조선시댄가, 오래된 이야기다. 봄에 임금님이 농사를 짓자고 손수 쟁기질을 해 보이시는 날, 들판에 구름처럼 모여든 백성들이 모두 둘러앉아 간단한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이 설렁탕이다.

 

설렁탕을 먹으면서 시인은 회상한다. 비도 추적거리는 인사동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한 조지훈의 첫 시집풀잎 斷章초간본을 옆에 놓고 설렁탕을 먹던 시절을. 조지훈(1920~1968) 선생님을 생각한다.

 

선생님과 생전 처음 함께 왔던 그 시절, 훌훌 국물을 바닥까지 비우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모습은 마치 소설 운수 좋은 날빙허(憑虛) 현진건(1900~1943)의 인력거꾼 같으셨다. 이처럼 설렁탕은 서민의 음식이다.

 

흔히들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설렁탕은 사골과 뼈를 오래 고아 만들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것으로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곰탕은 양지와 사태 등 고기 위주로 끓여낸 것으로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는 점이 설렁탕과 다르다.

 

그러나 현세에는 모두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있다니, 점차 구별이 사라지는 셈이다.

 

100년 설렁탕집(종로의 里門 설렁탕집)엔 노인(老果)의 입맛들이 소주 한 잔 쭉 비우면서 설렁탕 한 그릇을 먹었다고 하나,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설렁탕 한 그릇 앞에 놓고, 땀 뻘뻘 흘리며, 시원한 막걸리 한 주발 들이키면 카~ 좋다. 그러면, 누구 덫 남~.

 

 

정진규 시인(1939~2017)은 경기 안성 출생으로 1957년 안성농고 재학 중에 같은 학교의 김정혁, 박봉학, 홍성택 등과 동인 시집 모화집(募話集), 바다로 가는 합창(合唱), 등을 프린트본으로 간행, 그해 학원 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나팔 서정(抒情)으로 등단,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학주간을 역임하였고,

 

산문시의 성공적 전형을 보였으며 시인의 시에는 마침표가 없다. 만물은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이음의 관계라 보았다. 중요한 우리말일수록 마침표 없는 한 음절이라고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등등,

 

시집으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마른 수수깡의 平和, 有限의 빗장,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매달려 있음의 세상, 비어있음의 충만을 위하여, 연필로 쓰기, 뼈에 대하여,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 , 도둑이 다녀가셨다등이고,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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