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
경주 선도산*에 지신 밟으러 가서 나무들에 싹도 채 피어나기 전/ 갓 나온 곰취 여린 잎을 된장에 싸서 먹으니/ 싱싱한 풋냄새 입 안 가득 넘쳐 푸른 봄날이 바다처럼 밀려 왔다//
아낙네가 된장찌개 끓여 놓고 기다리던 따뜻한 아랫목도/ 길고 추운 겨울 보내고 입안에 씹히는/ 곰취 잎에서 번져 오는 풋풋한 봄기운만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영양*어느 시골 장터의 소란하고 허름한 밥집에서/ 우연히 만난 된장찌개는 영 잊히지 않는 한국의 맛,/ 산해진미가 아니라 된장찌개에서 힘을 얻고 정을 나누고/ 들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던 옛사람들이/ 두런거리던 말소리가 밭두렁에서 더운 김을 솟아오르게 하고 있다//
황토방이나 흙벽담에서 전해 오는 푸근한 냄새는/ 된장찌개 먹고 살던 사람들의 토속의 향기가 배어 있는/ 기나긴 삶의 이야기, 한국 사람을 제대로 알려고 한다면/ 된장을 나누고 찌개를 끓이고 기쁨과 설움이/ 환하게 차려진 밥상을 함께 해야 봄기운 확 퍼지는 맛을 누리게 되리라.//
*선도산: 경주 서쪽에 있는 산 이름, 남산을 바라보고 있음.
*영양:경상북도 영양.
최동호 시인의 <된장찌개>
<어설픈 해설>
한국 사람을 제대로 알려고 한다면, 된장을 나누고 찌개를 끓이고, 기쁨과 설움이 환하게 차려진 밥상을 함께 하고, 봄기운 확 퍼지는 맛을 함께 누려야 하나니, 그래야 한국인을 바르게 알게 되나니, 그래야…… 되나니,
원래 시(詩)라는 선비는 옛 추억을 먹고 살기 때문에, 시인은 옛일을 더듬는다. 어느 시골 장터의 소란하고 허름한 밥집에서 우연히 만난 된장찌개는 영 잊히지 않는 한국의 맛이라, 산해진미가 아니더라도 이 맛이면 그만인 것을, ……, 된장찌개 맛이면 그만인 것을.
아낙네가 된장찌개 끓여 놓고 기다리던 따뜻한 아랫목에서, 길고 추운 겨울 보내고, 입안에 씹히는 곰취 잎에서, 피어 오는 풋풋한 봄기운을 맡아 보지만, 어쩐지 어설프다. 그래서……, 된장찌개는 겨울이 제맛이긴 하다만,
봄기운이 나는 봄에도 된장찌개가 안 어울리지는 않겠다. 된장찌개에 곰취 넣고 폭폭 끓이면, 그 맛은 둘이 먹다가 옆이 넘어져도 누구 알리오.……, 이름하여 곰취 된장찌개라, 얼씨구나, 좋구나.
황토방이나 흙 벽담에서 전해 오는 푸근한 냄새가 된장찌개 먹고 살던 토속의 향기가 배어 있는 기나긴 삶의 이야기, 그 이야기 들으며 먹는 찌개라, ……, 들으며 먹는 찌개의 맛이라.
시인은 또 회상한다. 경주 어느 산에 올라, 달 밝은 밤에, 지신 밟으러 가서 다른 나무들은 아직 싹도 채 피기 전에, 갓 나온 곰취 여린 잎을 된장에 싸서 먹으면, 싱싱한 푸른 냄새가 입 안 가득 넘쳐 푸른 봄날이 바다처럼 밀려왔다니,
……, 그러니, 된장이 되고, 끓이면 된장찌개가 되나니.
최동호 시인(1948~현재)은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시인협회 회장, 고려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예 계간지 《서정시학》을 창간하였고,
시집으로 『제왕나비』, 『수원남문언덕』, 『황금가랑잎』 등이 있으며,
김삿갓문학상. 유심작품상. 박두진문학상. 고산문학상. 편운문학상. 김태환평론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시와시학상. 소천비평상. 대한민국문학상평론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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