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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청국장>

시평

by 웅석봉1 2023. 7. 1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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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할머니가 메주를 뜨는 날은/ 온 동네에 고약한 냄새가 퍼지는 날이었다/ 할머니가 간장을 쑤는 날은/ 온 동네의 개들이 짖어대는 날이었다//

 

그보다 열 배는 더 고약한 냄새/ 청국장을 보글보글 끓이는 날은/ 창문 다 열고 선풍기까지 동원하지만/ 냄새는 옷에도 몸에도 가방에도 배어/ 우리는 학교에 가서 얼레리꼴레리/ 바지에 똥 싼 아이 취급을 받았다//

 

냄새는 고약하지만 맛은 죽여주는 청국장/ 할머니 손끝은 참으로 요술쟁이여서/ 이맛살 찌푸리며 한 숟갈 뜨면/ 미소가 번지면서 숟갈질이 바빠졌다/

 

메주콩을 더운물에 불렸다 물을 붓고 푹 끓여/ 말씬하게 익힌 다음 보온만으로 띄운 청국장/ 콩 사이사이에 볏짚을 넣고 띄우면/ 똥 색깔 똥 냄새 할머니처럼 퀴퀴한 청국장//

 

할머니 돌아가신 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사라졌다//

 

이승하 시인의 <청국장> 전문.

 

 

<어설픈 해설>

 

할머니가 메주를 뜨는 날은, 온 동네에 고약한 냄새가 퍼지는 날이었다. 할머니가 간장을 쑤는 날은 온 동네의 개들이 짖어대는 날이었다. 그래서 동네가 난리였다. 아니 온통 난리였다.

 

그런데 그보다 열 배는 더 고약한 청국장을 끓이는 날은 오죽하랴. 하지만 그 맛은 두 사람이 먹다가 옆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 그것이 할머니의 요술 방망이인 손의 맛이라.

 

청국장이란 할머니의 손맛이라,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할머니의 그 손맛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이제 어디서 그 맛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 그 맛을

 

청국장 하나를 통하여 시인은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나도 어린 시절이 그립다. 아주

 

 

이승하(1960~ 현재)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화가 뭉크와 함께>로 등단,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시집으로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 폭력, 등과

 

소설집으로 길 위에서의 죽음, 산문집으로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으로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등이 있고,

 

문학 평론집으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 문학의 미래에 대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등이 있으며,

 

지훈상, 편운문학상, 한국가톨릭 문학상. 들 소리 문학상. 시와 시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고, 교도소 재소자를 상대로 문학 강의를 많이 하는 시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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