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까치설날이면 우리 동네 삼꽃마을/ 김 구장 댁 마당의 발동기가/ 숨 가쁘게 통통거렸다/ 집집마다 시루에서 쪄낸 쌀밥을 이고 지고 와서/ 발동기로 떡가래를 뽑아 가느라 붐볐다/
우리 집 박 서방이 한 짐 날라 온/ 떡가래를 협도로 써는 일은 내 몫이었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밤늦도록/ 오대 五代 봉사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 준비를 해놓고는/
외동아들 설빔으로 솜바지 저고리 조끼까지/ 손바느질로 끝내느라 꼬박 밤을 밝히셨다/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한 그릇 떡국은/
우리네 가장 큰 명절인 설날 아침에만 맛볼 수 있는/ 축제 의식의 아주 맛있는 별미였다/ “떡국을 많이 먹으면 죽는단다”/ 할머니의 우스개 말씀처럼 떡국 한 그릇은 나이 한 살/ 떡국 먹고 나이 먹고 떡국 먹고 키가 크고/
잠자리에 들면서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은 떡국 먹는 날/ 먹은 나이 다 내려놓고 돌아갔으면/ 어머니가 지어주신 새 한복 입고/ 조상님께 절하던 그 아침으로/
이근배 시인의 <떡국> 전문.
<어설픈 해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제께 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그땐 그랬지. 설날에 떡국 먹던 그 시절은 그랬지. ……, 그 시절은 그랬지.
떡국 먹고, 나이 먹고, 떡국 먹고, 키가 크고, 잠자리에 들면서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은 떡국 먹는 날이었지, ……, 호랑이 담배 피우던 그땐 그랬었지
먹은 나이 다 내려놓고 돌아갔으면, 어머니가 지어주신 새 한복 입고 조상님께 절하던 그 아침으로, 그 시절로 돌아갔으면, ……, 그립다. 그 시절이. 떡국 먹던 그 시절이.
아마도 시인의 어머니는 제법 부유한 종갓집 맏며느리이고, 시인은 외동아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할머니는 있는데, 할아버지는 아버지는 ……, 없다. 여성 독점시대라, 허허 좋다. 좋아.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여성. 남성. 구별이 안 되는, 아니 구별치 않는… 남자 재단사에 남자 요리사까지 등장하는, 그래서 직업에도 구별이 없는 다중성의 시대라, 허허, 그것도 좋다. 좋아.
이근배(1940~ 현재) 시인은 충남 당진 출신으로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그해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출간하였으며,
1961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2년 《동아일보》,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시조가 당선되어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신화를 쌓았다.
1963년 문화공보부 신인 예술상 시, 시조 2개 부분 수상. 1964년 동인지 《신춘 시》에 참가하는 등 60년대 시단의 새 기수로 등장, 1967년 도서 출판 《중앙출판공사》 초대 편집장 1973년 한국시조시인협회장 1976년 《한국문학》 주간으로,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역임. 월간 《한국문학》 발행인 겸 주간, 계간 《민족 문학》 주간 역임.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육당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시집으로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은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시조집으로 『동해 바닷 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장편 서사 시집 『한강』, 수필집으로 『시가 있는 국토 기행 1, 2』 등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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