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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의 <선지해장국>

시평

by 웅석봉1 2023. 7. 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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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해장국

 

한 사내가 근질근질한 등을 숙이고 걸어갑니다/ 새벽까지 마신 소주가 아직 온몸에 절망을 풍기는/ 저 사내/ 욕을 퍼마시고 세상의 원망을 퍼마시고/

 

마누라와 자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퍼마시다가/ 누구를 향해 화를 내는지 두리번거리다 다시 한잔/ 드디어 자신의 꿈도 씹지도 못한 채 꿀꺽 넘겨버린/

 

저 사내/ 으슥으슥 얼음이 박힌 바람이 몰아치는 청진동 길을/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걸어가다가/ 바람처럼 선지해장국집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야릇한 미소를 문지르며 진한 희망 냄새 나는/ 뜨거운 해장국 한 그릇을 받아 드는데/ 소의 피, 선지 한 숟가락을 물컹하게 입 안으로/ 우거지 한 숟가락을 들판같이 벌린 입 안으로/

 

속풀이 해장국을 한 번에 후루룩 꿀꺽 마셔버리는데/ 그 사내 얼굴빛 한번 시원하게 붉으레 합니다/ 구겨진 가난도 깡 소주의 뒤틀림도 다 사라지고/ 속 터지는 외로움도 잠시 풀리는데/

 

아이구 그 선짓국 한 그릇 참 극락 밥이네/ 어디서 술로 밤을 지샌 것일까 구석진 자리/ 울음 꽉 깨무는 한 여자도/ 마지막 국물을 목을 뒤로 젖힌 채 마시다가/ 마른 눈물을 다시 한번 문지르는데/

 

쓰린 가슴에 곪은 사연들이 술술 사라지는데/ 여자는 빈 해장국 오지그릇을/ 부처인 듯 두 손 모으고 해장국 수행 끝을/ 희디흰 미소로 마무리를 하는데……

 

신달자 시인의 <선지해장국> 전문.

 

 

<어설픈 해설>

 

시인은 이 시에서 해장국을 통한 인생사 애환과 해장국 집의 분위기를 깨알같이 표현했는데……, 아이구나, 그 선짓국 한 그릇 참 극락 밥이었네요. 감사하고 행복하고 부럽고 시원하고 고맙고,

 

새벽까지 마신 소주가 아직 온몸에 절망을 풍기는 저 사내, 욕을 퍼마시고 세상의 원망을 퍼마시고, 마누라와 자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퍼마시는, 저 사내를 녹일 그 무엇은 없나요.……, 있지요.

 

누구를 향해 화를 내는지 두리번거리다 다시 한잔하고, 드디어 자신의 꿈도 씹지도 못한 채 꿀꺽 넘기는 저 사내, 살얼음 박힌 바람이 몰아치는 청진동 길을 쿨럭거리며 걸어가는 저 사내, 저 사내를 녹일 그 무엇은 없나요, 있지요. 암요 있고 말고요.

 

어디서 술로 밤을 지샌 것일까, 구석진 자리 울음 꽉 깨무는 저 여자도, 마른 눈물을 다시 한번 문지르는 저 여자도, 저 여자를 녹일 그 무엇은 없나요. ……, 암요 있고 말고요. 있지요.

 

술꾼들이 새벽이면 항시 드나드는 청진동 선지해장국 집이 그 집이지요. 청진동이 아니라도 좋지요. 부산의 자갈치시장. 광주의 양동시장. 대구의 서문시장. 대전의 중앙시장. 춘천의 중앙 전통시장. 인천의 모래내시장……,

 

또 어느 시골의 어느 골목시장도 좋겠지요, 암요. 어디라도 좋지요. 그곳에 가서 해장국 한 그릇 후루룩 마시면 되지요. 암요,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고맙고, 감사하지요.

 

신달자 시인(1943~현재)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1964<여상> 신인상으로 등단 후, 1972현대문학을 통해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재등단하고, 명지전문대. 평택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한국시인협회회장. 정지용문학상. 김성준문학상. 공초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춘향문화대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와시학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고,

 

시집으로 봉헌 문자, 열애, 북촌, 겨울 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그녀의 푸른 날들을 위한 시, 간절함, 오래 말하는 사이, 너를 위한 노래, , 눈송이에 부딪혀도 그대 상처 입으리, 재능을 키워준 나의 어머니, 노래했을 뿐이다, 뒤늦게 만나 사랑하다, 등 열일곱 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장편소설로 물 위를 걷는 여자를 비롯하여, 산문집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백치 애인,엄마의 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고백,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나는 마흔에 이 세 가지를 배웠다,등의 산문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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