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장옥관의 <메밀냉면>

시평

by 웅석봉1 2023. 7. 2. 08:40

본문

 

메밀냉면

 

겨울을 먹는 일이다/ 한여름에 한겨울을 불러 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앉히는 일/ 팔팔 끓인 고기국물에 얼음 띄워/ 입 안 얼얼한 겨자를 곁들이는 일//

 

실은 겨울에 여름을 먹는 일이다/ 창밖에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이야말로/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

 

그래서일까 내 단골집 안면옥은/ 노른자위 도심에 동굴 파고 해마다 겨울잠 드는데/ 풍속 바뀌어 겨울잠 자는 게 아니라/ 냉면은 메밀이 아니라 간장독 속 검고도 깊은 빛깔처럼/ 그윽한 시간으로 빚는 거라는 뜻 아닐는지//

 

장옥관 시인의 <메밀냉면> 전문.

 

 

<어설픈 해설>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조상 대대로 이어오는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칼칼한 그 맛이라,

 

간장독 속 검고도 깊은 빛깔처럼, 그윽한 시간으로 빚는,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 ……, 그 맛이라,

 

팔팔 끓인 고기국물에 얼음 띄우고 메밀국수를 풀어, 입 안 얼얼한 겨자를 곁들이면 코를 콕 쏘는 그 맛이라,

 

창밖에는 흰 눈이 펑펑 날리는 겨울밤,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서,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그 맛이라,

 

찰 냉()에 국수 면()이니, 냉면이라. 냉면은 시원한 음식이라, 겨울 맛 쌀쌀 나는 여름 음식이라, 바꾸어 말하면 겨울에 여름을 먹는 것이라 ……, 지금이 딱 그 시기라.

 

장옥관(1955~현재) 시인은 경북 선산 출신으로 계명대학교와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7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황금 연못, 바퀴 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에 나는 북벽에 살았다,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동시집으로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가 있다.

 

김종삼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일연문학상, 노작문학상 등 수상하였다. ()

 

'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달자의 <선지해장국>  (1) 2023.07.05
김윤의 <매생이국>  (1) 2023.07.03
이하석의 <따로국밥>  (5) 2023.07.01
이재무의 <수제비>  (1) 2023.06.29
이병률의 <김밥>  (4) 2023.06.28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