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냉면
겨울을 먹는 일이다/ 한여름에 한겨울을 불러 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앉히는 일/ 팔팔 끓인 고기국물에 얼음 띄워/ 입 안 얼얼한 겨자를 곁들이는 일//
실은 겨울에 여름을 먹는 일이다/ 창밖에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이야말로/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
그래서일까 내 단골집 안면옥은/ 노른자위 도심에 동굴 파고 해마다 겨울잠 드는데/ 풍속 바뀌어 겨울잠 자는 게 아니라/ 냉면은 메밀이 아니라 간장독 속 검고도 깊은 빛깔처럼/ 그윽한 시간으로 빚는 거라는 뜻 아닐는지//
장옥관 시인의 <메밀냉면> 전문.
<어설픈 해설>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조상 대대로 이어오는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칼칼한 그 맛이라,
간장독 속 검고도 깊은 빛깔처럼, 그윽한 시간으로 빚는,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 ……, 그 맛이라,
팔팔 끓인 고기국물에 얼음 띄우고 메밀국수를 풀어, 입 안 얼얼한 겨자를 곁들이면 코를 콕 쏘는 그 맛이라,
창밖에는 흰 눈이 펑펑 날리는 겨울밤,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서,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그 맛이라,
찰 냉(冷)에 국수 면(麵)이니, 냉면이라. 냉면은 시원한 음식이라, 겨울 맛 쌀쌀 나는 여름 음식이라, 바꾸어 말하면 겨울에 여름을 먹는 것이라 ……, 지금이 딱 그 시기라.
장옥관(1955년~현재) 시인은 경북 선산 출신으로 계명대학교와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7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황금 연못』, 『바퀴 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에 나는 북벽에 살았다』,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등. 동시집으로 『내 배꼽을 만져 보았다』,가 있다.
김종삼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일연문학상, 노작문학상 등 수상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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