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어느 날의 김밥은/ 굴리고 굴려서 힘이 된다/ 굴리고 굴려서 기쁨이 된다// 잘라진 나무의 토막처럼 멋진 날이 된다// 김밥은 단면을 먹는 것/ 둥그런 마음을 먹는 것/
그 안의 꽃을 파먹는 것// 아픈 날이면 어떤가/ 안 좋은 날이면 어떤가/ 김에서는 바람의 냄새/ 단무지에선 어제의 냄새/ 밥에서는 살 냄새/ 당근에선 땅의 냄새//
아이야/ 혼자 먹으려고 김밥을 싸는 이 없듯이/ 사랑하는 날에는 김밥을 싸야 한단다// 아이야/ 모든 것을 곱게 펴서 말아서 굴리게 되면/ 좋은 날은 온단다/
이병률 시인의 <김밥> 전문.
<어설픈 해설>
아이야, 모든 것을 곱게 펴서 말아서 굴리게 되면 좋은 날이 온단다. 옳거니, 좋은 날이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그렇지요. 그렇고……,말고.
김밥은 자르고 자른 단면을 먹는 것, 아니, 둥그런 마음을 먹는 것, 아니지 그 속의 꽃을 파먹는 것이지……, 그렇고말고 그렇지.
김밥은 굴리고 굴려서 힘이 된다. 아니 굴리고 굴리면 기쁨이 된다. 아니, 굴리고 굴리면 갈라진 나무토막처럼 멋진 작은 우주가 될…터이니, 이 아니 얼마나 거룩한가.
냄새가 난다. 김에서는 바람의 냄새가, 단무지에선 어제의 냄새가, 밥에서는 쌀 냄새가, 당근에서는 땅 냄새가, 난다. 난다. 난다. 냄새가 난다. 좋은 냄새가 난다.
좋은 냄새는 좋은 것이다. 봄에서는 풀 냄새가, 여름에서는 꽃 냄새가. 가을에서는 홍시 냄새가, 겨울에서는 눈 냄새가 난다면,……옳거니, 조오~타.
그러면 김밥 싸서 산으로 들로 소풍 가자. 소풍을 나가자. 그리하여 다 같이 춤을 추자. 즐겁게. 또 즐겁게.
이병률 시인(1967년~ 현재)은 충청북도 제천출신으로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좋은 사람들」, 「그날엔」 두 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여, 박재삼 문학상. 발견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하였고
시집으로 『바다는 잘 있습니다』, 『꽃이 오고 사람이 온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느낌 그게 뭔데, 문장』,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혼자가 혼자에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끌림』,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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