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
겨울에 도시로 전학 와 새 학교 갔다/ 처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녁이 오도록 집을 못 찾고/ 비슷비슷한 골목길을 헤매다녔다/
시골집에서는 저녁때가 되면 무쇠솥을 들썩이는 밥물의 김처럼/ 부엌문을 열고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만으로/ 동네 어디에서 놀고 있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나 혼자의 힘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며,/ 찐빵집 앞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바라보았다/ 겨울 저녁 찐빵집 앞을 지나가다 보면 그때처럼/ 추억의 온도로 부연 찐빵의 김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어진다/
팥소 가득한 찐빵을 뜨겁게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으면/ 하얀 김 속에서 그렇게,/ 집에 가다 말고 잠시 서 있고 싶어진다/
박형준 시인의 <찐빵> 전문.
<어설픈 해설>
무쇠솥을 들썩이는 밥물의 김처럼,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동네 어디에서 놀고 있어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밥물이 무쇠솥을 들썩이다니, 기똥차게 힘 있는 표현이다.
그뿐인가 아니지. 팥소 가득한 찐빵을……,찐빵집 앞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추억의 온도로 부연 찐빵의 김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어진다. 왜? 추억의 온도니까.
그래서 추억은 온도가 된다. 그래서 하얀 김과 추억은 같은 뜻의 말이 된다. 그래서 하얀 김과 추억과 온도는 동의어가 된다. 이것이 시인의 심정일 것이다.
시인은 어느 겨울에,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왔을 것이다. 그때 거리를 지나면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찌는 음식점을 지난다. 역시 뜨끈한 찐빵은 추운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그곳에서 그 먹고 싶은 찐빵을 돈이 없어 사 먹지는 못하고 김이 모락거리는 그곳을 잠시 서 있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시절은 그만큼 가난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그랬으니. 이를 어쩌랴……, 아니. 문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더욱 가난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박형준(1966년~ 현재) 시인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명지대학교 대학원을 (문학박사) 졸업하고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구의 힘)으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는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생각날 때마마 울었다』, 『불탄 집』, 등. 산문집으로 『저녁의 무늬』, 『아름다움에 허기지다』, 평론집으로 『침묵의 음』 등이 있다
육사시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동서문학상. 꿈과시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창비》 편집위원과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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