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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탁번의 <빈대떡>

시평

by 웅석봉1 2023. 6. 26. 11:59

본문

빈대떡

 

1

동네 잔칫날/ 어른들은 풍물을 놀고/ 차일 아래 아낙네들이/ 솥뚜껑 엎어놓고 빈대떡을 부치면/ 고소한 냄새가/ 고샅길 따라 저녁연기처럼 퍼졌다/ 지게미 먹고 볼이 발개진/

 

까까머리 바둑머리/ 조만조만한 아이들은/ 거나하게 취한 어른들 흉내내며/ 맛있는 빈대떡 한입씩 물고/ 맴맴을 돌았다//

 

2

비 내리는 어슬한 저녁/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빈대떡 안주라야 제맛이다/ 한 사발 한입에 비우고/ 빈대떡 먹을 때면/ 그 옛날의 풍물 소리가/ 마른 검불 날리듯/ 보스락보스락 들려온다/

 

슬금슬금 빈대떡 집어주던/ 진외당숙모와 어머니는/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아나, 하고 부르던 목소리는/ 귓가에 이냥 생생하다/

 

한여름 피어나는 샛노란 녹두꽃도/ 가을 뙤약볕에/ 조롱조롱 여무는 녹두 꼬투리도/ 아주 잘 보인다//

 

오탁번의 시인의 <빈대떡> 전문.

 

 

<어설픈 해설>

 

한여름 피어나는 샛노란 녹두꽃도, 가을 뙤약볕에 조롱조롱 여무는 녹두 꼬투리도, 아주 잘 보인다……,그래야 녹두꽃이지요. 그래야 녹두 꼬투리지요. 암요. 그래야지요.

 

왜냐구요. 빈대떡을 녹두로 만드니까요. 빈대떡은 원래 녹두가 원료였으니까요. 노래도 있지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요릿집엔 왜 왔야고……,

 

그러나 지금은 녹두가 밀가루보다 엄청 고가이니, 녹두로 만든 빈대떡은 엄청 귀하고, 대신 밀가루 빈대떡이 흔해졌지요. 그러니 빈대떡 노래는 옛날의 추억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 시절, 녹두로 빈대떡을 만든 시절이 그립고 아쉽지요. 그래서 아련하지요. 그래서 술지게미 먹고 볼이 발개진 까까머리 바둑머리 조만조만한 아이들이 거나하게 취한 어른들 흉내를 내고 싶은 거지요. 그것이 보고 싶은 거지요. 그렇지요.

 

그뿐이 아니지요, 동네 잔칫날이면 남자들은 풍물을 놀고, 차일 아래 아낙네들은 솥뚜껑 엎어놓고 빈대떡을 부치지요. 그러면 그 고소한 냄새가 고샅길 따라 저녁연기처럼 퍼져 나가지요. 암요. 그 시절이 또 그립지요. 암요.

 

또 있지요. 비 내리는 어슬한 저녁에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빈대떡이 안주라야 제맛이지요. 그땐 그랬지요. 하긴 한때 청탁불문(淸濁不問)하고, 마셔대던 나로서는 할 말이 없지요. 때늦은 후회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려야지요. 감사하지요.

 

한편, 그때 슬금슬금 빈대떡을 입에 집어 주던 진외가 댁 당숙모와 어머니의 아나,”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그리워지지요, 왜냐구요. 벌써 돌아가셨으니까요. 자고로 살아 계실 때는 데면데면해도 돌아가시면 항상 그리운 법이 거던요. 음 그렇겠지요.

 

~~~, 오늘같이 우중충한 장맛비 시작하는 날, 빈대떡 한 접시 놓고 막걸리 한잔하면 더없이 좋겠지요. 그렇겠지요. 그러하겠지요. 그러면 감사하겠지요.

 

 

오탁번(1943~2023) 시인은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철이와 아버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1969년 대한일보 소설 처형의 땅으로 당선되어 신춘문예 3관 왕이 되었다.

 

시집으로는 아침의 예언,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 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 장갑, 손님, 우리 동네, 시집 보내다,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처형의 땅, 새와 십자가, 저녁연기, 혼례,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은순의 아침, 등이 있으며,

 

평론집으로는 현대문학산고,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 구조, 현대 시의 이해, 시인과 개똥참외, 오탁번 시화, 헛똑똑이의 시 읽기, 작가 수업, 병아리 시인, 두루마리등 다양한 산문이 있다.

 

시인은 1998년 시 전문 계간 시안을 창간했고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2020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문학작가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삿갓문학상. 은관문화훈장. 고산문학상 시부문 대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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