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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의 <전>

시평

by 웅석봉1 2023. 6. 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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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제일 먼저/ 가마솥 뚜껑 엎어놓고 콩기름 들기름 두르고/ 여자들은 둘러앉아 전을 부쳤다/ 동태포나 애호박에 밀가루 묻히고 계란 옷 입혀/

 

실고추, 쑥갓 잎으로 모양을 낸다/ 그뿐이랴/ 온갖 재료로 반죽을 하여 부쳐내는 부침개도 있다/ 지짐개나 막부치라고도 했다/ 그러니 한국의 전은 수백 가지도 넘을 것이다/

 

어릴 적/ 큰댁에 제사 지내러 가신 부모님 기다리다/ 까무룩 잠든 밤/ 잠결에 고소한 냄새 풍겨오던 제사 음식에 꼴깍/ 입맛 다시다 잠들곤 했다/

 

긴 겨울 지나 봄비 내리는 어느 날 냉장고를 뒤져/ 지글지글 빗소리 닮은 부추전과 김치전을 부치고/ 개나리소반에 쌀알 동동 뜬 동동주까지 곁들여/ “한잔하지……하고 불러내면/ 소 닭 보듯 데면데면하던 그 남자도 금세 환해진다/

 

그러니 제사상의 쇠고기 산적이나 싸구려 부추전도/ 육전이나 해물파전도 모두 평화주의자,/ 이 음식 앞에선 모두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한 세상 같이 건너갈 친구가 된다/ 보수도 진보도 함께 아우러지는 평화주의자가 된다/

 

 

김지헌 시인의 <> 전문.

 

 

<어설픈 해설>

 

어릴 적, 큰집에 제사 모시려 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다가 까무룩 잠든 밤이었는데 잠결에 고소한 냄새에 취해 다시 일어나서 고구마한 입을 먹고 다시 잠든 기억이 새롭거나

 

아니면 긴 겨울이 지나서 봄비 내리는 어느 날 냉장고를 뒤져 지글지글 빗소리 들으며 빗소리와 닮은 부추전을 부쳐 개나리 소반에 닮아 쌀알 동동 구르는 동동주까지 한 잔 곁들여

 

한잔하지……하고 친구라도 불러내면 그날은 친구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은 날이지. 그래요, 한잔합시다. 친구야~.

 

또 언젠가 마을 잔치가 있는 날, 그때가 아마 가을쯤이었지. 동네 여자들이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지. 그땐 그랬었지……,

 

그땐 가마솥 뚜껑을 엎어놓고 콩기름 들기름 두르고 동태포나 애호박에 밀가루 묻히고 계란 옷 입혀 실고추, 쑥갓 잎으로 모양도 내었지. 그땐 그랬었지……,

 

그뿐이 아니었지. 갖은 재료로 반죽해서 부쳐내는 부침개도 많았었지. 이름하여 지짐개니 막부쳐내는 부침개도 있었지. 아마도 수백 가지는 되었었지. 그땐 그랬었지, 아니 지금도 그렇겠지.

 

아이참, 하나 더 있지. 제사상의 쇠고기 산적이나 싸구려 부추전이나 육전이나 해물전도 모두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한세상같이 건널 친구가 되는 거지.그러면 보수도 진보도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주의자가 되는 거지.……그런 거지. 암요.

 

김지현(1956~ 현재) 시인은 수도여자사범대학 졸업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는 심장을 가졌다, 다음 마을로 가는 길, 회중시계, 황금빛 가창오리 떼, 배롱나무 서원등이 있으며, 2020년 시인협회 사무총장 역임함.

 

풀꽃 문학상. 미네르바 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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