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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의 <삼계탕>

시평

by 웅석봉1 2023. 6. 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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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고향을 떠난 후 평생을 이 도시, 저 도시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거나……먹은 것이 부실해 늘 비실거렸다/

 

중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다닐 때, 개학을 하고 좀 지쳐 있을 때, 집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쯤 되었을 때/ 주춤주춤 식목일이 왔다 한식일이 왔다 청명일이 왔다 주말에 잇닿은 휴일이 왔다/

 

비실거리며 고향집 문턱을 들어서면 와락, 밀려들던 삼계탕 냄새./ 어머니는 객지에서 고생하는 장남을 위해 올해 한식일에도 삼계탕을 끓였다/

 

멋쩍고 미안하고 죄스러워 어머니, 고마워요 낮고, 작고, 조그맣게 겨우 한 마디 뱉었다/ 닭을 잡아 뱃속에 찹쌀, 마늘, 인삼, 대추, , 호박씨 등을 넣고 푹푹 끓인 삼계탕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온몸이 뜨거웠다 기운이 불끈 났다 더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겨울 눈보라를 잘 견디셧는지 어떤지 조상님들 산소 한 바퀴 휙 둘러보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삼계탕 한 그릇을 먹고 도시로 돌아와도 보이지 않는 각개전투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글자들의 아래에 악착같이 나는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이은봉 시인의 <삼계탕> 전문.

 

 

<어설픈 해설>

 

 

비실거리며 고향 집 문턱을 들어서면 와락, 밀려들던 삼계탕 냄새……,고소하다. 맛있겠다. 어머니가 끓어 놓은 삼계탕 냄새……,

 

청명. 한식은 하루 차이고 이어서 식목일이니 잇닿은 휴일이겠다. 그런데 주춤주춤 왔다니 멋지다. 어머니는 객지에서 고생하는 장남을 위해 올 한식 즈음해서도 삼계탕을 끓였다, 휴일이면 고향에 오는 시인은 늘 그랬다.

 

그러면 멋쩍고 미안하고 죄스러워 어머니, 고마워요, 낮고 작고 조그맣게 겨우 한마디 뱉었다. 시인은 어릴 때부터 부잣집의 도련님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도시로 유학을 나갔다.

 

그즈음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거나 먹는 것은 부실했다. 그러니 항상 비실거릴 수밖에, 그때 어머니가 끓어 주시는 삼계탕은 보약이었다. 그러고는 인근 조상님들 산소는 겨울 눈보라에 무탈하신지 둘러보는 것이었다.

 

삼계탕……, 닭을 잡아 뱃속에 찹쌀. 마늘. 인삼. 대추. 밤. 호박씨까지 넣었으니 얼마나 영양 만점의 보양식이었겠는가. 게다가 어머니 사랑까지 듬뿍 넣은 삼계탕이니 더 무얼 말하리요.

 

도시로 돌아오면 치열한 현실이 시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무에 겁나겠는가. 시인은 오늘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글자들과 악착같이 밑줄까지 쳐가면서 시를 짓고 읽고 있는 것이었다.

 

 

이은봉(1953~현재) 시인은 충남 공주 출신으로 숭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3삶의문학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로 평론을, 1984창작과비평신작 시집마침내 시인이여좋은 세상6편의 시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봄바람, 은여우, 생활, 걸어 다니는 별, 뒤뚱거리는 마을등이, 평론집으로 시와 깨닭음의 형식, 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등이, 시선집으로 초식동물의 피, 초록 잎새들등이, 저서로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화두 또는 호기심,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저술가다.

 

시인은 한성기문학상. 유심작품상. 한남문인상. 충남시인협회 본상. 카톨릭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시와시학상. 자랑스러운한남인상. 김달진문학상, 풀꽃문학상, 등을 수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부이사장. 충남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 현재 광주대학교 명예교수. 대전문학관 관장 등을 맡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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