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개나리 깔깔거리며 올라올 때쯤 해서는/ 아들 딸 치우는 집들도 덩달아서 피어났다./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는 이 집 저 집 불려가/ 바쁘게 종종걸음치며 노곤한 봄과 씨름했다/
한참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기다리지 못하고/ 동생들 손잡은 채 울렁거리는 잔칫집 기웃대면/ 행주치마 속으로 묵 한 대접 그득하게 날라/ 모퉁이에 우리들 앉히고 얼른 먹게 하던 어머니/
행주치마 펄럭이며 다시 부엌으로 종종걸음 가는/ 서운한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 투정 섞이는 탓에/ 참기름 냄새 고소하게 번지는 부들부들한 맛,/ 왠지 서러워 울먹울먹하면서 배를 채웠는데/
급하게 돌아오면서도 우리들은 체하지 않았다/ 그득하게 차오르는 서러움의 기억 더욱 부르려/ 쓸쓸한 날이면 묵 한 사발 비벼 밥 대신 먹는다/ 청포묵도 좋고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이어도 좋다/
뭉근하게 고여 들어 입 속을 고루 만져 주다가/ 헛헛한 뱃속 그득하게 부풀려주는 식물성의 화평/ 오래 뜸들이고 있는 사람의 전갈이라도 올 듯하다/ 동생들 집에 뫼는 날은 푸짐하게 쑨 묵 식혀가며/
그 시절 잔치들이 어머니 젊은 행주치마 꺼내본다/ 묵묵히 함께 가르는 묵 한 모, 두 모마다 덮이는/ 개나리 울타리 동글동글하던 마을의 날들 노랗다/ 싫지 않은 서러움의 배부름, 스윽 묵 맛을 다신다./
한영옥의 시인의 <묵> 전문
<어설픈 해설>
행주치마 속으로 묵 한 대접 그득하게 날라서 우리 앞으로 내민 어머니, 행주치마 펄럭이며 다시 부엌으로 종종걸음 가는 어머니, “그 시절 잔치들과 어머니 젊은 행주치마를 꺼내본다.” 아…… 그립다, 그 시절의 어머니가. 그 시절의 묵이……
“개나리가 깔깔거리며 올라올 때쯤 해서는 아들딸 치우는 집들도 덩달아서 피어났다.” 맛깔나다. 어찌 개나리가 깔깔거리며 올라온단 말인가. 그런데 장가 시집 보내는 일이 또 어찌 꽃처럼 피워 오른단 말인가. 시 전체가 이런 식이니 시인은 위대하다.
옛날이야 모두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없는 밥 대신 묵 한 사발이 헛헛한 배속을 부풀리게 했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어머니가 품삯인가 사례금인가로 받아온 묵 한 그릇으로 한 끼를 해결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묵이 훌륭한 웰빙 식품이 아니던가. 특히 도토리에는 단백질. 식이 섬유. 니아신. 비타민 A. B. C. 베타카로틴. 칼륨. 칼슘. 아연. 철분. 엽산 등이 함유되어 있다.
그래서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간을 건강하게 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장 기능을 높이고, 당뇨병을 관리하고, 노화를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영옥(1950년~현재) 시인은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적극적 마술의 노래』, 『처음을 위한 춤』, 『안개편지』, 『비천한 빠름이여』, 『아늑한 얼굴』, 『다시 하얗게』,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 『사랑에 관한, 짧은』 등이 있음.
수상으로 천상병시상. 최계락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전봉건문학상 등이 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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