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잡수시오, 잡수시오/ 이 술 한 잔 잡수시오/ 이 술은 술이 아니라/ 우리 모친 눈물일세/ 우리 모친 땀이로세/ 권주가 권주가를 부르면서/ 술지게미 먹고/ 진달래 같은 어린 얼굴로/ 춘궁기 고개 넘어가듯/ 고부로 삼남으로/ 마음 죽창으로 깎아들고/ 육자배기 부르며/ 고개 넘어 넘어서 가자/ 어깨 들썩이면서 가자/ 허기지면 권주가로/ 막걸리잔 나누면/ 태평성대가 뭐 부러우랴/ 낙화유수가 뭐 대수이랴/ 용수 박아 고운 술 떠내고/ 천한 듯 막 걸러낸 술이지만/ 어디 막걸리가 막걸리냐/ 잔 가득 철철 넘치는 정이지/ 그믐의 가슴 환히 밝히는/ 사랑의 묘약 중 묘약이지
김왕노 (1957년~현재)의 막걸리 전문
*어설픈 해설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라 하여 막걸리가 되었다. 그렇게 막 걸러내니 서민의 술이다. 막말로 막걸리는 점잖은 사람은 마시지 않는 상놈의 술이다. 하고 많은 술 중에 막걸리만큼 만만한 술이 또 있다던가.
그래서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요, 가난한 사람들의 상호부조의 술이요, 인정의 술이다. 그래서 시인은 가난한 사람의 가슴을 환하게 밝혀주는 사랑의 묘약 중에, 묘약이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막걸리도 엄연한 술이다. 배운 사람의 학식이 덜 배운 사람의 상식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막걸리는 배운 사람이 마시는 학식의 술이 아닌 덜 배운 사람이 마시는 상식의 술이겠다.
이런 막걸리는 어떻게 만들겠는가. 우선 밀이나 보리를 고아서 누룩을 만들고 누룩을 숙성시킨 다음에 쌀로 밥을 꼬들꼬들하게 지어서(고두밥) 물을 적당히 부어 독에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서 용수 박아 청주를 떠내고, 삼배로 짜면 막걸리가 되고 남은 찌꺼기가 술지게미가 된다.
그런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든 술이니 이를 만든 사람(시에서는 모친)의 땀이요 한편 옛날에 술도가의 막걸리가 안 팔리면 관에서 소위 밀주 단속을 다녔는데 그때 혹시 들킬세라 술독을 거름 자리 속에 숨기곤 하였으니 술 담은 아낙네들의 눈물이 아닌가.
어릴 때 나도 양식이 없어 막걸리를 걸러낸 술지게미를 사카린에 타서 먹고 붉은 얼굴로 학교에 갔었다. 그때 학생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학교에 왔는가 오해받은 경험이 있다. 그래서 막걸리 하면 막걸리만큼이나 사연이 많고도 아련하다.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 낮도 가고 밤도 간다. 머물지 마라, 돈도 사랑도 이별도 오늘 있다고 영원히 있는 것도 아니요, 오늘 없다고 영원히 없는 것도 아니다. 머물지 말라 그 어떤 것에도……,
잘난 사람도 가고 못난 사람도 가고 좌도 가고 우도 간다. 막걸리 한잔하니 이렇게 기분이 좋다. 그러니 아옹다옹하지 말고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면서 살자. 마치 막걸리처럼……
김왕노 시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공주교대와 아주대학원으로 졸업하고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꿈의 체인점>으로 등단 2022년 <시와 경제> 주간으로 있으며 최근에 인기 상승 중인 디카~시(사진에 간단한 시를 쓴 시 장르) 협회로부터 제1회 디카~시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다.
마침 오늘이 만물이 생장하여 한가득 차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다는 소만이자 부부의 날이다. 막걸리 한잔하면서 백년해로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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