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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시평

by 웅석봉1 2023. 5. 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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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 모두 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 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전문

 

 

*어설픈 해설

 

사평역은 강남 한복판에 있는 그 지하철역이 아니다. 아마도 하루에 기차 몇 대만 통행하는 강원도 두메산골 어디쯤의 간이역이겠다. 그런 한적한 사평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쓸쓸한 모습과 삶의 애환이 눈에 보인다.

 

창밖에는 송이송이 잇달아 촘촘하게 눈이 내려 쌓여만 가는데 역대합실 안에는 이글거리는 톱밥 난로를 가운데 두고 승객의 일단은 그믐달처럼 졸고 있고 또 일부는 감기에 걸려 쿨럭거린다. ……,그런데 막차는 아직 오지 않는다.

 

그런 쓸쓸하고 아련한 상황에서 시인은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한 줌의 톱밥을 모아 불빛 속으로 던져 준다.

 

그러나 살아온 내력들은 많으나 시린 손바닥을 불빛에 모아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산다는 것은 때로는 술에 취한 듯 또 때로는 한 두름의 굴비나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침묵하며 가는 것이지.

 

그래서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담배 연기 속에서도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는데 그런 서민들의 애환에 귀를 적시며 그렇게 흘러가자. 그리하여 서서히……, 자정은 넘어가고 있는데 세상은 온통 설원이다.

 

이때 단풍잎 같은 울긋불긋한 몇 량의 꼬리를 달고 기차는 왔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는데……,그리웠던 순간들의 떠올리면서 나는 또다시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으로 던져 넣고 말없이 그 역을 빠져나온다. ~ 삶은 왜 이렇게 고단하고 쓸쓸한가.

 

하지만 만사는 일체유심조라, 그러니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 아니던가. 희망을 버리지는 말지어다.

 

 

이 시는 곽재구(1954~ 현재) 시인의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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