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와 억새에 대하여
<갈대의 순정>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에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보낸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 못 잊어 우는 것은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갈대의 순정//
-박일남 작사· 오민우 작곡 <갈대의 순정>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전문.
*어설픈 해설
<갈대의 순정>은 가수 박일남(1939~현재)이 1963년에 발표한 노래로 우리가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가사고, 시 <갈대>는 신경림(1935~현재) 시인의 첫 시집『농무』에 수록된 시다. 그리니 아주 오래된 낡은 소재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낡은 소재를 가을도 아닌데 왜 지금 소환하는가? 수일 전에 한 친구가 갑자기 가을을 끄집어냈기에 생각이 나서다. 어쨌든 그건 중요치 않다.
그러면 과연 갈대란 무엇이며 누구인가. 먼저 누구인가부터 살펴보자. 우선 사나이가 갈대인가? 여인이 갈대인가? 보통 갈대는 여자를 상징하는데…… 아닌가? 하긴 갈대가 여자냐? 남자냐로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갈대는 무엇인가? 갈대는 바보처럼 우는 것이다. 사나이가 울기 전에 갈대가 먼저 운다. 운다고 소리 내어 우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 속으로만 운다. 차라리 통곡이라도 하면 당장은 몹시 흔들려도 곧 평온을 찾으련만 속으로만 흐느끼니 진정이 쉽게 되겠는가.
또한 갈대는 순정이요, 이별이요, 비참함이다. 그러나 갈대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러니 갈대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또한 갈대는 바람이 오기 전에 먼저 쓰러진다. 그래서 갈대는 지조가 없다. 갈지다로 왔다 갔다 하는 게 갈대다. 그래서 갈대가 되었다. 그래서 갈대는 묘한 식물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갈대를 노래하고 있다.
갈대와 비슷한 억새가 있다. 구별해보자. 갈대와 억새는 모두 가을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그러니 갈대와 억새는 가을이고 가을에는 벼가 무르익으니 갈대와 억새는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그러나 차이점이 더 많다. 갈대는 갈색이고 억새는 은색이다. 갈대는 마디가 있고 억새는 마디가 없다. 갈대는 속이 비어있고 억새는 속이 차 있다. 갈대는 키가 크고 억새는 키가 작더라. 갈대는 물가에 많고 억새는 산에 많더라.
산다는 것은 슬픈 것이요, 힘든 것이요, 허무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위대하고 동시에 비참하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모순적인지 모르겠다. 세월이 많이도 흘렸지만 <갈대의 순정>을 부르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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