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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의 <어처구니>

시평

by 웅석봉1 2023. 5. 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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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밭에 덮어 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 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이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아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에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이덕규 시인의 <어처구니>의 전문이다.

 

 

*어설픈 해설

 

이런 봄날 마늘밭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감대라 그것도 숫처녀 성감대라……,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이제 막 눈을 떠는 노란 마늘 싹들이 시인의 눈엔 숫처녀의 성감대로 보였나 보다. 일단 기발한 착상이다.

 

그것을 살짝 건드렸더니 글쎄 펴진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았다니 난감한 일이다. 손가락은 폈다. 굽었다 하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흥분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럼 수줍었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 도대체 뭘까? 그것은 시()이기 때문이리라.

 

시가 아니라면 그런 손가락은 불가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시가 아니었다면 성희롱에 걸려서 사람들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시는 그래서 세속을 초월한다. 그래서 시가 깨끗한 것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시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리라.

 

이덕규 시인은 경기도 화성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다. 시인은 1961516,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 태어나 토목기사로 일하다가 전업 시인이 되었다.

 

그는 정남면의 <보통 저주지>를 끼고 500m 내려가면 흙과 나무로 지은 집, <토우방>에서 산다. 첫 시집, 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2003)와 두 번째 시집, 밥그릇 경전(2009), 그리고 세 번째 시집, 놈이었습니다(2015), 최근(2023)에는 오직 사람 아닌 것을 출간하였다.

 

수상 경력으로는 현대시학 작품상(2004), 시작 문학상(2011), 오장환 문학상(2016)을 받았다. 그는 2009년 노작 홍사용 문학관장과 경기 민예총 문학 위원장을 역임하고 2020131일에 경기 민예총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어처구니는 첫 시집 <다국적 구름 공장 안을 엿보다>에 수록된 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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