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언저리에 다다르자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형은 익사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형이 죽은 다음 다음날 형의 시신은 가루가 되어 그 저수지에 뿌려졌다. 혹시 엄마가 그곳에…….내가 대학 다닐 때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할머님과 함께 그곳을 가본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그곳을 찾아서 차를 몰았다. 한참을 헤맸다. 기억을 더듬어 가까스로 저주지 입구를 찾았다. 도로가 입구까지 새로 나 있었다. 차를 세우고 눈이 소복한 고갯길을 걸어 올라갔다. 둑이 보인다. 그 위로 올라섰다. 저수지는 얼음으로 꽉 차 있다. 황량한 바람결에 내 머리칼이 헝클어진다.
둑 위엔 아무도 없다. 못 둑길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때였다. 저쪽 남쪽으로 양지바른 곳에 빨간 무엇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숨을 죽이고 다가갔다. 꽃이다. 장미 한 다발이다. 엄마다! 엄마가 다녀가셨다. 여기서도 나는 왜? 장미 한 다발인지 알지 못한다. 꽃이 놓인 자리 부근의 흙이 반들반들하다. 엄마는 이곳에서 며칠을 지내셨나 보다. 엄마의 숨결이 아직도 느껴진다.
형이 죽은 이후 엄마는 나에게 형 이야기를 한 번도 하신 일이 없다. 아니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는 바로 행방을 감추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감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형은 항상 엄마의 가슴에 있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안다. 엄마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형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도대체 엄마는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 날씨가 흐려지고 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났다. 아주 어렸을 적에 엄마가 어딜 갔다가 밤이 되어도 안 오시면 그렇게 슬퍼서 울곤 하였다. 혹시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을 가신 것은 아닌지 하고 걱정도 했다.
그때 형은 나에게 화를 냈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늦게 오신다고……, 형은 나를 겁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다. 그때 아마 형도 나만큼이나 엄마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형의 얼굴에 쓰여있었다. 그래서 형과 나는 눈물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가 두고 간 장미 다발을 들었다. 그리고 한 송이 한 송이를 뜯었다. 그리고는 못 둑을 걸으면서 하나씩 하나씩……,얼음 위로 던졌다. 붉은 송이가 형의 얼굴이 되어 나에게로 다가온다. 내 얼굴이 번들거린다. 뜨거운 액체가 자꾸만 볼을 타고 흐른다. 그칠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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