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활달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내성적인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엄마와 할머니가 무척이나 생각났지만, 학기 중반이 되어서는 거의 잊어버릴 수 있었다. 엄마가 감옥에 계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만날 수는 없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체념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있는 곳은 우리와는 별개의 세상으로 생각했다. 이모님이 그렇게 말했다. 이모님은 사촌들에게도 엄마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사촌 형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엄마가 생각날 때는 가끔 일기에 적었다.
그리고 할머님이 생각날 때는 편지를 썼다. 할머님은 고모님을 시켜 나에게 답장을 보내시곤 했다. 언제나 할머님은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잘 먹고 이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편지에 당부하셨다.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사촌 형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형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나와 같이 이야기하고 놀아줄 시간이 없는 모양이었다. 슬슬 외롭기 시작했다. 그즈음 엄마가 자주 보고 싶었다. 꿈에서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도 가끔 들렸다.
때로는 할머님과 엄마가 동시에 나타나고, 우리 집 소도 꿈에 보였다. 할머님께 편지를 썼다. 할머님도, 엄마도 보고 싶다고 했다. 가을을 지나 초겨울이 되니 공부하기도 싫어지고 밥맛도 없었다. 찬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는데 들고 있던 책가방을 놓쳤다.
가방을 든 오른쪽 팔에 힘이 빠졌다.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나 황당했다. 입에서는 침도 저절로 흘러나왔다. 기운도 없고 추웠다. 병이 났다. 그길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날 밤 두꺼운 형의 외투를 걸치고 한의원에 입원하였다. 이모님도 근심 어린 모습이다. 나는 정말 죄송하였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이모님께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려다가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날 늦게 할머님이 병원으로 오셨다. 나는 할머님 품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데려가 달라고 할머님을 졸랐다. 할머님도 말씀이 없다.
침을 맞고 일주일 동안 한의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했다. 다행히 팔에 힘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렇지만 곧바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한동안 이모님 댁에서 쉬고 곧이어 방학이라 건강은 회복되고 이듬해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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