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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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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3. 1. 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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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요,

 

사실 그럴 겨를이 없었지요. 내가 살아온 길을 보면 아시겠지만 20대 초반에는 유신 홍보한다고 정신없었지요. 그때 높은 곳에서 지시가 떨어져 가, 면서기들과 차드를 만들어 야간에 마을을 돌면서 설명했지. 한국적 민주주의가 우리 몸에 좋다, 그래서 그거 하려는 것이니 국민투표에 동그라미 그려 달라고, 호소했소.

 

사실 그때는 그게 제법 괜찮은 줄 알았습죠. 그리고 5.18 당시에는, 부산에 살았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북에서 빨갱이가 침투 해가 광주가 난리라는 신문 방송 소리에 안타까운 마음에 쓴 소주만 마셨소.

 

그즈음 6월 항쟁 때 부산 광복동에서 <호헌철폐>를 부르짖으며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을 측은하다는 생각으로, 내가 근무하는 5층 빌딩에서 내려다보고만 있었고요. 그 시절 업무에 시달리고 술 마시다 보니, 다른 생각 할 새가 없었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스럽지만, 지난 과거니 어쩌겠소.

 

, 한 건 생각나요. 그때, 3당 합당할 때, 이건 아닌데 하면서 술상을 쳐 엎은 적은 있소. 그건 분명히 국민을 무시한 밀실 야합이었고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말이요. 책상을 박차고 나가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하니 뭐 쇠뿔도 가진 게 있나. 경력이 있나. 헛물만 켜고 말았습죠.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오. 지금이야 자유인이니 걸리는 게 없어요. 그래서 한 번 크게 놀아 볼까 하는데, 뭐가 문제 있습니까?

 

-문제!

 

어허, 이놈. 자네 말대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놈이, 지금 와서 뭘 한다고? 자네가 지금 백수가 되더니 손이 근질근질한 모양인데, 자고로 붓은 순수해야 오래 가는 기여. <참연><모던> 인가 그런 어려운 거 말고 <순수> 한 거, 말이여. 순수! 순수가 바탕이 되고 그 토대에서 <참여><모던>이 나와야 참 문학인 거여.

 

작품과 현실을 착각하면 안 되는 기여. 현실에 집착하면 참 붓을 갈 수가 없어. 현실은 정신 차리고 보되 멀리서 보란 말이여. 나무보다는 숲을,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하는 기여. 그 몇 년 전에 그곳을 떠난 소설가 이청준이 있지, 그 사람을 봐. 그 사람은 시류에 편승하질 않았어. 그런 사람이 참 붓쟁인 기여.

 

명심할 것은, 지금은 냉전도 이념도 군부 독재 시대도 아니여. 지금은 말이여. 전문화, 유목화, 가족화 시대여. 깃발보다는 내실을, 사회보다는 인간을 더 고민하는 시대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보라고, 지금은 그런 서정 소설의 시대여.

 

내 보아 허니, 가까운 사람끼리 노는 그 무슨 카펜가 단톡인가 하는 데가 있더군. 그런 곳이 제격이여. 거기 보면, 훼방꾼이 몇 사람 있지. 그 사람들 신경 써지마.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세상이니. 신경 놓고 가끔 들러서 신변 잡답이나 하는 기여. 뭐 거대 담론 같은 건 피하는 게 좋아. 자네 센머리 더 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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