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82년이 지난 영조 12년(1739년) 김태남의 상소와 영조의 영민함으로 부인은 ‘공소순열 단경왕후(恭昭順烈 端敬王后)’라는 시호(諡號)와 온릉(溫陵)이라는 능호(陵號)를 얻고 왕후로 복원되었다. 이로써 단경왕후는 역사상에 가장 짧은 왕후로 기록된 것이다.
단경은 아들도 딸도 두지 못하고 쓸쓸히 한 많은 세상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조 역사상 왕후, 사십오 분 중에 단경왕후보다 오래 산 분은 단종비인 정순왕후 송 씨(1440년~1521년)를 비롯한 단 여섯 분에 불과하다. 정순왕후도 후사가 없었다. 역시 여인은 한이 많고 후사가 없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가 보다.
-단경(端敬), 수례집의(守禮執義)를 ‘단(端)’이라 하고, 숙야경계(夙夜儆戒)를 ’경(敬)이라 한다. -영조가 내린 시호의 해석이다. 어쩌면 이리도 맞는 시호인가.
온릉(溫陵)은 말 그대로 따뜻하고 순결하였다. 내가 처음 만난 온릉의 소감이다. 온 산이 붉게 물든 어느 봄날에, 그동안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단경 할머니를 처음으로 대면했다. 왕후는 후손인 나에게 말씀하셨다.
<후세 호사가는 나를 울면서 대궐을 나왔다느니 남편을 못 잊어 치마바위 전설을 만들었다느니 하는데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나는 가례를 올리면서 친정을 잊었듯이, 건춘문을 나서면서 나를 버렸을 뿐이다.>
그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워 활엽수가 동면을 준비하는 최근에 다시 능(陵)을 찾았다. 그러나 더 이상 왕후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능은 포근하고 고요하였다.
능은 사적 210호로 지정되었으며 출입하려면 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2019년 11월에 개방되어 지금은 누구나 무시로 참배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의 명문장가 양사언(1517년~1584년)은 <단경왕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시(挽詩)를 지어 올렸다.
<왕비의 덕 일찍이 중전으로 들어갈 때/ 육궁의 좋은 금실 일시에 열렸네/ 곤산은 잠깐새 불어 일어나고/ 계수나무 풍상은 풀보다 엷구나/ 상림의 꽃에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힐 때/ 장신궁의 꿈을 생각하며 옷깃 적신다/한 조각 붉은 마음 요대의 달이 되어/ 응당 서쪽에서 밤마다 오리>
조선의 왕비(이가 출판사), 2003년 12월 간행,
지은이 윤정란. 참조.
#이 이야기는 2017년 5월 수목드라마<7일의 왕비>로 KBS 2TV에 소개되었다.
-2011년. 늦가을에 초안하여 2023년 1월에 완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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