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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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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3. 1. 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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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출세요? 지금 이 나이에 출세해서 뭐 하겠소 만은, 말이 나온 김에 내 아는 대로 말하리다. 조부(祖父)님은 두 아들을 보신 후 얼마 안 되어서 병사하셨다오. 조금 있는 재산 노름과 술로 탕진하고 (주색잡기 중에 색은 절대 아니었고) 일본사람들 바짓가랑이 잡고 물고 늘어지다가 화병이 나서 요절하셨소.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인물은 거창 고을에서 알아주었다고 생전의 조모(祖母)님께서 앉으나 서나 자랑이 대단했다오.

 

조부(祖父)님이 그렇게 유산도 없이 돌아가시니 조모님과 두 아들은 길거리로 나 않을 정도로 가난했었고, 그래서 부()가 열두 세 살 때, 일곱 살 터울인 형님과 함께 돈 벌려 만주로 일본으로 건너갔었다고 들었소.

 

한 칠팔 년 떠돌이 생활하시다가 천신만고 끝에 조그만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와서 논 다섯 마지긴가를 사서 형제가 농사짓고 살았다 했소. 형은 세 마지기 동생은 두 마지기 공평하게 사이좋게 나뉘었지요.

 

백부님이 살아생전에 그 이야기만 끄집어내면 듣는 우리는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장편소설 한편 감은 족히 될 것이오. 조부님 이야기는 주로 백부님께서 들려주셨고 부()께서는 이런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으셨다오.

 

아마도 과묵하신 성품 탓인지? 아니면 좀 창피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형제가 고생한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하고,

 

그러다가 부()께서는 동란이 터지기 전 해에, 만혼(晩婚)하시어, 나는 전쟁이 한창인 신묘년 한여름에 태어났소이다. 그때 부()는 입대하여 군 생활을 한 참 하는 중이었소. ()도 없이 태어난 나는 모() 혼자 키웠으니 모()께서 겪은 고생은 어찌 말로 다 하겠소. 세월이 흘러 올해가 신묘년이라, 그러고 보니 이 몸도 제법 오래 살았지요?

 

-허허, 나이 육십도 나이라고, 요즘은 팔십이 넘어야 노인 취급하는 시절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오래 살기는 뭐가 오래 살아! 내 듣자 하니 요즘 붓대 가는() 취미에 빠져있다면서 그게 사실인고?

 

*놈이라고! 어라, 말을 막 까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체 당신은 누구요? 더 이상 말 못하겠소, 그만둡시다!

 

-이 사람아 내가 성질이 급해 말이 과했네. 천천히 말해 보시게

 

*그렇게 숙이고 나와야 나도 순순히 말하지요. 세상이 하도 삐뚤어져 가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오. 남북이 갈라져서 싸움질한 지가 그 얼마인데 최근에는 포탄을 쏘아 대지나 않나, 4대강 살린다고 하면서 온 나라 파 엎은 먼지로 농군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이 질 않나,

 

저축은행인가 뭔가에서는 시민들이 맞긴 돈으로 엉뚱한 짓 하다 애꿎은 서민들만 골탕 먹이질 않나, 그뿐인가요. 협동조합인가에서는 보초 잘못 세워 아까운 농민재산 축내지나 않나, 자본시장 육성(?)한답시고 투자한 주식도 본전이 안 되니, 이래저래 마, 속 터져 내 붓 춤이나 한바탕 추려고 하오.

 

-붓 춤!

 

어허, ~. 자네가 뭔 국가를 위해 투쟁한 경력이 있다고 붓 춤이여. 걱정하는 건 좋다 만 붓 춤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로다. 자네가 중 경력이 있어 고은이가 되겠다는 겐 가? 아니면 감옥 경력이 있어 황석영이나 김지하가 되겠다는 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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