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을 회상하며-도 본부 검사역(檢査役) 시절(2~1)
그렇게 하여 살기 좋은 가고파의 도시 마산(馬山)에서 2년 동안, 좋은 세월(歲月?)을 보내고 1991년 4월 1일 자로, 창원(昌原)에 소재(所在)한 경남도 본부로 발령(發令)을 받았다.
아마도 지부장(支部長)님이 나를 도본부장(道本部長)님께 추천(推薦)한 것으로 기억(記憶)한다. 본부장님과 지부장님은 고등(高等)과 대학(大學)의 선후배(先後輩) 사이였다. 물론 도본부장(道本部長)님이 선배(先輩)셨다.
도본부장(道本部長)님께서도 농협대학장(農協大學長)까지 역임하신 강직하고 학구적(學究的)인 인물이셨다. 지금도 서울에서 농협 동인회(同人會)를 잘 이끌고 계신 분이다.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원(祈願)한다.
도 본부의 검사부(檢査部)에 발령받고, 관내 회원농협에 감사(鑑査) 출장을 다녔다. 이것이 내가 감사(鑑査) 업무와 인연(因緣)을 맺은 시초(始初)가 되었다.
그 후 도 본부 검사역(檢査役)으로 2년, 중앙본부 검사역(檢査役)으로 3년, 감사실장으로 2년. 합(合)하여 7년이라는 기간을 감사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인연이란 묘하다. 인연(因緣)이 인맥(人脈)이 되고 인맥이 권력(權力)이 되고 권력이 힘이 되더라나. 허허허!,
하고많은 사조직(私租織)도 마찬가지다. <구우회(九友會)>는 농협 입사(入社)라는 인연으로 끈도 되고 힘도 되었고, <농감(農鑑) 포럼>은 이봉주 감사님이 끈이 되고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원만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산청 동인회>도 산청(山淸)이란 지역(地域)이 인연이 되고 끈이 되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검사역(檢査役)은 중앙본부 검사역(檢査役)과 도 본부 검사역(檢査役)의 역할이 조금 다르다.
중앙본부 검사역(檢査役)은 중앙본부는 물론이고 중앙회 영업점을 감사하는데, 도 본부 검사역(檢査役)은 도내(道內)의 회원농협만을 감사한다.
가끔은 교체(交替) 감사라 하여 자도(自道)가 아닌 타도(他道)의 회원농협을 감사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중앙본부에서 주관한다. 이런 경우는 1년에 한두 번 정도였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만, 그때는 그랬다.
지역 본부 검사역(檢査役) 시절 일화(逸話) 두서너 가지를 소개한다.
조합장을 농민 조합원들이 직선(直選)으로 선출하던 초창기(1980년대)에는 회원 조합장들이 감사를 거부(拒否)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특히 농민 운동권(농민회) 출신이 조합장에 선출(選出)되면 그들은 주장(主張)이 다르다.
중앙회는 회원농협과 농민을 위해서 있는 조직인데 일선 농협을 감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식으로 따지고 들었다. 머슴이 주인을 감사한다? 있을 수 없다는 주장(主張)이다.
전연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나, 굳이 따지자면 일선 농협은 중앙회의 주인이 아니다. 진정한 주인은 농민(農民) 조합원(組合員)들이다. 이를 간과(看過)하면 안 된다. 하지만 제도가 정착된 이후에는 그런 일은 사라졌다. 이후에는 감사를 자청(自請)하는 조합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 본부 검사역(檢査役)은 팀장급이 반장이다. 가끔은 선임 대리급이 반장을 맡는 예도 있기는 하지만……. 감사 인원은 많게는 다섯 명, 적게는 두 명의 검사역(檢査役)이 한 조가 되어, 일주일씩 출장을 간다.
1991년 7월 8일부터 13일까지 김해 모 농협에 감사 출장을 나갔다. 반원은 양 검사역(檢査役), 장 검사역(檢査役), 신 검사역(檢査役), 최 검사역(檢査役)이었다. 거의 모든 반원이 나보다 연장자(年長者)였다.
감사하는 도중에 유효기간(有效期間)이 경과 된 농약이 창고에 제법 있었다. 이를 발견한 검사역(檢査役)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해당 직원에게 질문서(質問書)를 주고 우리는 퇴근하였다.
유효기간 경과 농약(農藥)은 그 즉시 농약 회사에 반품하는 것이 원칙인데,……, 다음날 출근(出勤)하여 어제 일을 추궁(追窮)하니, 당시 전무님이 자기 돈으로 전액(全額)을 판매 처리하여 사고로 이어지지는 못한(?) 일이 있었다.
책임자의 이런 행위는, 혹시나 부하직원의 잘못으로 처리되어 처벌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부하직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처사(處事)로 이해하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이처럼 그 전무님은 부하 사랑이 남달라 후배 직원들로부터 존경(尊敬)을 독차지하였다는 세평이었고, 그런 인품 좋은 아버지에 그 따님이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후 그 전무님의 따님이 노무현 대통령의 장남(長男)과 결혼하였다.
그래서 그 전무님은 노 대통령과 사돈이 되었고, 농협 퇴직 후에는 농협의 자회사(子會社) 임원까지 하시고 은퇴(隱退)하셨다. 지금은 고향 김해에 내려와서 잘 지내며 나와는 수시(隨時)로 연락하는 사이다. 참으로 세상은 오묘(奧妙)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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