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을 회상(回想)하며> (감사 출장)
검사역 3년 차, 2000년 제14차(2000년 5월 15일) 감사 출장은 전북의 부안군(扶安郡) 지부의 정기감사였다. 정기감사(定期鑑査)는 월요일에 착수하여 토요일에 강평(講評)을 끝으로 종료한다. 그때는 주5일 근무제가 아니었다. 주 5일 근무제는 2004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월요일(月曜日) 아침, 우리 감사팀 다섯 사람은 영등포역(永登浦驛)에 모여서 기차로 김제역(金堤驛)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부안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지났다. 그래서 역 부근(附近)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부안군지부에 들어서니 오후 2시 30분이었다.
지부(支部)에 도착하여 감사실(鑑査室, 실장은 구봉현 선배님)에 착수(着手) 보고를 하고, 시재금(時在金) 조사부터 했다. 시재금 조사는 검사역(檢査役) 두 명이 하였는데 그날도 이상은 없었다. 만약 이상이 있다면, 비상사태가 되어 검사역도 수감 사무소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감사 수반(首班)은 보통 월요일(月曜日)과 화요일(火曜日)에 업무 파악을 끝내고 수요일(水曜日)이나 목요일(木曜日)쯤에 관내 조합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주요 일과다. 그것은 관내 조합장(組合長) 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수감(受鑑)지부의 여론(與論)을 청취하기 위함이다.
여론(與論)이 좋지 못하면 그 원인을 파악하여 감사업무에 참고하는데 실제로 나쁜 여론은 없고, 주로 칭찬(稱讚) 일색이다. 생선에도 뼈가 있듯이 칭찬에도 급수(級數)가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명 검사역이다. 우리 검사역들은 모두 명(名) 검사역이 되기를 희망한다.
5월 18일, (그날은 5.18 민주화(民主化) 기념일(記念日)이었다) 목요일(木曜日)에 저녁을 사겠다고 소재지 조합장이 연락이 왔다. 대개 소재지 조합은 그 군(郡)의 대표 조합으로, 검사역들이 다른 농협보다 우대(優待)하는 조합(組合)이다.
그날은 지부 직원들의 동석 없이 소재지 조합장과 우리 검사역들만의 단독 식사 자리로, 그만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오붓한 자리였다. 그날 밤, 식사하면서 5.18을 비롯한 신변 잡담 등을 나누었는데, 대화 중에, 그분의 회계 지식이 박식(博識)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복식부기(複式簿記)나 회계(會計) 원리를 나보다 더 잘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에 탄복(歎服)하여 어떻게 회계를 그렇게 잘 알고 잘 설명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합장님은 상고(商高)를 졸업(卒業)하여 회계는 좀 안다고 말했다.
검사역들은 사전에 출장지 관내 농협장들의 인적 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나온다. 그런데 소재지 조합장은 중졸로 되어있었다. 그러한데도 상고를 나왔다? 그래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어느 상고를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에 부산상고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술이 깰 정도로 깜짝 놀랐다. 경북에서는 간혹 부산으로 유학(遊學)하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전라도에서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분은 <먼저 사람이 되자>라는 소박한 실천철학(實踐哲學)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 부산상고라는 학교를 왜 떳떳하게 밝히지 않았을까?
혹시 모를 역차별(逆差別)을 걱정한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서, 1차에서는 그 정도로 하고 자리를 옮겨 조용한 장소인 2차를 갔다. 무슨 사유로 그가 전북(全北)에서 부산(釜山)까지 유학(遊學)했는가? 그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그분은 말했다. 고교 시절에 외삼촌이 부산시청의 고위(高位) 관리(官吏)라서 그분 때문에 부산까지 유학하게 되었다고 실토하였다. 그러면서 당시 고위 관직도 거명(擧名)하였다. 그 시절에 고위 관리의 사택에서 함께 숙식(宿食)하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의심스러워 학생 시절에 달고 다닌 교표(뺏지) 색깔이 어떤 것이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붉은색이었다고 말했다. 붉은색이라는 소리에 반가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고 또 동시에 기(氣)까지 질렸다. 그는 나의 1년 선배가 되기 때문이었다. 1년 선배는 하늘이었다.
참고로 부산상고는 교복에 달고 다니는 교표의 색깔이 학년별로 다르다. 흰색과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구분하는데, 나의 경우는 흰색이고 1년 선배는 붉은색, 2년 선배는 노란색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조합장들의 이력서에 중졸로 되어있을까? 그 의문이 세월이 한참 흘러 2022년 7월 30일, 그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서야 비로소 확실하게 풀렸다.
그의 자서전 《가지 많은 나무의 뿌리가 되어 (신아출판사, 2022년)》 37쪽을 보자
*부산의 내가 다녔던 상고를 찾아갔지만, 내 이름은 졸업자 명단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4분기 육성회비가 미납되었다는 이유로 한 달여 기간이나 무단결석으로 처리가 되어 그리된 것이다. 나는 고3 겨울방학 중에 외삼촌이 정읍으로 이사를 간 뒤, 학교는 물론 졸업식장(卒業式場)에도 가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중략-*
그분은 비록 졸업장은 받지 못하고 중도 퇴학(退學)이 된 셈이지만 나의 선배님임은 분명하다. 그분은 역시 우리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인품과 능력과 회계 실력 등을 바탕으로 전북 전체 조합장의 선거를 통하여 2012년 5월 31일 자에 당당히 중앙회 이사로 선출되었다.
그 후 그분은 지금(2026년)도 중앙회 이사(理事)로 재직 중이다. 전국 이사 중에서 최다선(最多選, 4선)이다. 2000년 5월, 정기감사 출장을 마치고 뜻밖의 험지(險地)에서 나는 소중한 동문(同門) 한 분을 발견하고 지금도 행복(幸福)하다.
그렇게 하여 우리 검사역들은, 토요일 오전에 강평(講評)을 끝으로 정기감사를 무사히 끝내고 서울역으로 귀임(歸任)하였다. 그 후 그 선배님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아마도 이런 인간관계는 생(生)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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