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을 회상하며><(채권(債權) 관리(管理)>
1987년 농협 부산지회 <기획관리과>에 근무할 때 일이다, 이관 채권 중에는 D 산업의 외화채권(外貨債權)이 있었는데, 10억 정도의 고액이었고 쌍방이 변호사가 선임된 채권이었다. 지방에서는 관리하기가 곤란(困難)하여 서울 본부 전문(專門)부서로 이관(移管)한 일이 있었다.
그동안의 소송(訴訟) 관련 서류를 챙기니 큰 가방으로 두 개나 되었다. 두 개의 가방을 두 사람이 들고 비행기를 타고 중앙회(中央會)로 갔다. 이관하는 쪽이 을(乙)인데도 본부 전문 부서는 기대 이상으로 친절하였다. 게다가 저녁에는 술밥까지 거나한 대접도 받았다.
초면인데도 업무도 잘 처리해 주시고 술밥까지 사주신 조 중신 선배님(42년생)께 감사드린다. 인사를 하고 보니 조 선배님과는 동향이었고, 퇴직 후에는 고향에서 동인회를 같이 하고 있다. 올해 팔순을 훌쩍 넘기셨는데도 불구하고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이라 건강도 여전하시다.
각설하고, 내가 범일동지점에서 6개월 만에 부산지역본부로 전입되어 채권(債權) 관리 업무를 담당한 것은 공인중개사 자격증(나는 1984년도에 실시한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함) 과, 그 후 공인감정사(公認鑑定士) 1차 시험에 합격한 것이 참작(參酌)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획관리과의 업무 중에는 채권 관리 외에 점포 조정 업무도 포함되어 있다. 점포(店鋪) 조정(調定)이란 지점이나 출장소의 신설(新設). 이전(移轉) 그리고 폐쇄(閉鎖)를 말한다. 점포 하나를 신설하려면, 주무과인 우리 과는 물론이고 총무과의 협조도 필요하였다.
총무과(總務課)에서는 각종 집기나 장표를 조달하는 일을 하였고, 우리 과에서도 정원 조정과 해당 건물의 감정이 필수다. 건물을 매입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임차하는 경우라도 감정해서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임차금(賃借金)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에서는 구서동(久瑞洞)지점과 재송동(栽松洞)지점을 개설하였다. 이런 경험이 후일 나에게는 큰 자산이 되어 매사(每事)에 무리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획관리과(企劃管理課)에 근무하면서 보람과 희열(喜悅)을 느끼면서 즐겁게 일했다.
안타까운 일은 당시 담당(擔當) 과장인 이 상희 선배님(양산 출신으로 기억함)이 2019년 11월에 별세(別世)하셨다. 별세 당시에 팔순은 못 미쳤을 것이다. 좀 더 사셔도 되는데, 술과 담배를 동시(同時)에 좋아하신 것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떤 분은 술을 고래처럼 마셔도 장수하고, 또 어떤 분은 술 근처에도, 못 가도 일찍 돌아가시는데, 이를 보면 술과 건강과는 특별한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건강을 무시하고 무작하게 술(酒)에 담배까지 겸한다면 낭패(狼狽)를 보지 않을까 한다.
기획관리과에서 2년을 보내고 나는 <저축금융과>로 발령(發令)받고 자리를 옮겼다. 그 시절 친절 봉사가 조직의 화두(話頭)였다. 그것은 1983년 이후 우리 조직이 처한 경영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실천 방안으로 친절 운동을 대대적(大大的)으로 벌였다.
농협의 전 사무소(事務所) 전 직원(職員)들은 매일 업무 개시 전, 직원 조회 시간에 음악에 맞추어서 친절 체조부터 하고 업무를 보았다. 농협의 친절 운동은 1983년 12월 조 관일(1949~ 현재) 동인(同人)이 《손님 잘 좀 모십시다》라는 책을 발간한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조관일 동인님은 2004년 말까지 농협에 근무하시다가 퇴직하고 나서, 강원도 정무부지사로 스카우트되셨고, 이후 대한석탄공사 사장까지 하신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사이다. 그는 《고객 응대》(1980) 등, 6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한 농협의 인재(人才)이기도 하다.
세월이 한참 흘러 내가 경기도로 올라가서 시흥지부장을 할 때(2003년), 신 자철(申子澈, 1945~ 현재) 당시 조합 감사위원장님과 조 관일 상무님이 본부로 입성하지 못한 것을 위로(慰勞)차 방문하여 격려(激勵)하여 주셨다. 그때 오이도 횟집에서 모신 기억이 아롱거린다.
신 자철 위원장님은 내가 감사실 검사역 시절에 감사실장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으며, 매사에 원만하신 분인데, 지금은 서예에 심취하여 <한중서화교류전>, 농협 동인회가 주체하는 서(書)· 화(畵)· 사(寫)· 시(詩) 전(展)에 출품하는 등 왕성(旺盛)하게 활동 중이다.
조 관일 상무님은 은퇴 후에 한국 강사협회(講士協會) 회장 등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창의경영연구소> 대표로 계시면서 유튜브로 노익장(老益壯)을 발휘하고 계신다. 조 중신, 신 자철, 조 관일 선배님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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