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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고파의 도시, 마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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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6. 3. 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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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임당(1504~1551), 조선 중기의 시인, 화가.

 

 

그리고 우리의 지부장님께서 나에게 골프를 배우라고 권유(勸誘)하셨다. 건강(健康)과 교양(敎養), 그리고 더 나아가 예금(預金) 추진(推進)을 위해서도 골프는 필수(必修)라고 강조(强調)하셨다. 지부장님의 골프 수준도 상당(相當)했다.

 

나는 처음에는 골프 치는 사람들을 탐탁잖게 생각했는데, 지부장(支部長)님이 하도 권()하니 하는 수 없이 골프에 입문(入門)하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연습장(演習場)에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그분은 창녕(昌寧) 부곡CC에 회원권(會員券)을 가지고 있었고, 때때로 즐겼다.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필드에 나갔다. 결과는 130타도 넘는 수준이었다. 그 후 가끔 동반자(同伴者)들이 멀리건을 주면, 싱글도 하곤 하였지만, 양심적으로 싱글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계속해서 형편없은 실력(實力)이다가 막판에는 보기플레이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골프 이론(理論)만큼은 남달랐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그 시절 TV 골프 프로를 즐겨 보기도 하고, 골프 이론(理論) 서적(書籍)도 많이도 읽었다. 그래서 골프의 기본(基本)<낫 헤드업(not head up)>이라는 정도는……, 터득(攄得)했다.

 

한편, 그분은 한 주일에 3, 4일 정도는 회원(會員) 조합 담당과장(지도과장)을 대동하고 관할(管轄) 농협에 지도 출장을 다니셨다. 이는 중앙본부에서 주로 지도(指導) 분야 업무를 담당하신 결과로 생각되었다. 모든 문제는 현장(現場)에 답이 있으니……,

 

그리하여 그분은 모든 사업의 기본(基本)은 지도(指導) 사업이라고 늘 강조(强調)하셨다. 처음에 나는 돈, 장사를 해서 먹고사는 농협으로서는 신용사업이 제일 중요(重要)하지 뭔 말씀이냐고 맘속으로 불만스러웠으나, 농협의 설립 목적(目的)을 생각하니, 고개가 끄떡여졌다.

 

아무튼 우리의 지부장님은 지도 사업이야말로 모든 사업의 기본이라고 강조(强調)하시면서 다른 사업(事業)은 좀 뒤처지더라도 지도 사업만큼은 1등을 해야 직성(直省)이 풀리는 분이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지도과장(指導課長)과 함께 일선 회원농협을 지도차 순방하곤 하였다.

 

그런 어느 날, 평소(平素)에는 업무를 마치는 오후 6시경에 사무실로 오셨는데 그날은 영업시간에 오셨다. 여기서 업무(業務)시간과 영업(營業)시간이 다름은 다 아실 것이다. 영업시간은 사무실 정문을 올리고 내리는 시간이고 업무시간은 업무를 끝내는 시간이다.

 

당시 금융기관(金融機關)9시까지 출근하여서, 업무 준비하고 930분에 정문(正門)을 열고, 오후 430분에 문을 내리는데 이것이 영업시간(營業時間)이고, 문을 내리고 나서도 오후 6시까지 1시간 30분 정도 잔무(殘務)를 처리하는데 이것이 업무시간(業務時間)이다.

 

그런데 한창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는 업무시간에 직원들에게는 죄송하고 눈치가 보이는 일이지만, 일부 책임자(責任者)들은, 지하실(地下室)로 직행하곤 하였다. 지하실에는 보일러실이 같이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여 고스톱 치기가 제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지부장님이 사무실(事務室)로 돌아와 보니 많은 책임자(責任者)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이상(異常)히 생각한 그분은 그들을 찾아서 사무실 이곳저곳을 살피셨다. 지금은 헐고 새 건물을 지었지만, 당시 농협 사무실은 창동(倉洞)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참고로 1층은 신용사업장(信用事業場, 예금· 대출 등)이고 2층은 기획(企劃총무과(總務課)와 경제(經濟) 지도과(指導課), 그리고 지부장실과 부지부장(副支部長)의 책상과 응접탁자가 있었고, 3층은 회의실(會議室)이었다. 그런데 아무 층에도 책임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지하실(地下室) 쪽으로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지하실(地下室)로 내려온 지부장(支部長)님은 우리가 고스톱을 치면서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듣고 아연실색(啞然失色)하셨다.

 

이 친구들이 업무시간(業務時間)에 일은 안 하고 고스톱을 쳐!” 하면서 지하실 문을 따고 들어서는데, 그 고함(高喊)이 천지(天地)를 진동(振動)하였다. 순간, “어이 큰일 났구나! 지부장이 닷!” 고스톱을 치던 우리들의 입에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터져 나온 함성(喊聲)이었다.

 

보일러실은 순식간(瞬息間)에 혼비백산(魂飛魄散)이 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대여섯 명의 직원들은 탁자 위의 화투는 뒷전이고, 구석으로 머리를 박고 숨는다고 아수라장(阿修羅場)이었으며, 일부 직원들은 보일러의 그을음이 옷에 묻어 얼굴까지 까맣게 변해버린 사람도 있었다.

 

난리도 그런 난리(亂離)는 없었다. 6·25 사변(事變)이나, 3·15 부정선거(不正選擧)4·19 혁명(革命)은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난리(亂離) 축에도 끼지 못했을 것이고, ()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벌써 떨어졌을 것이다. 과장(誇張)이 심했나? 아이~~!

 

이후 불같은 성격(性格)의 지부장님은 참석한 책임자(責任者)들을 불러놓고 모두 사표(辭表)를 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일단 사표를 쓰고 사정(事情)하기로 하였다. 한 번만 용서(容恕)해 달라고……. 사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모두 징계감이다. 어휴!!!

 

하지만 지부장님의 노여움을 풀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일과 후에 그분을 달래서(꼬셔서?) 단골집으로 모셨다. 꼬시는 데는 넉살 좋은 석() 차장님이 전문(專門)이었다. 석 차장님의 꼬심에 마음이 풀어진 그분은 이번만 용서(容恕)한다면서 그날 밤에도 많이도 마셨다. 우후후,

 

2년 후 나는 지부장님의 천거(薦擧)로 경남지역본부로 전출되어 그곳에서 검사역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지부장님도 경기도로 이동하시어 고양시 지부장을 1년 하시고, 중앙본부(中央本部)로 들어가서 원예(園藝 양곡(糧穀종합유통(綜合流通) , 부장의 중책(重責)을 맡았다.

 

그 후 경남지역본부장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셨다가, 화려한 농협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停年) 퇴임하시고, ) 부산유통(釜山流通) 초대 사장을 역임(歷任)하셨다. 그 후에도 퇴직 동인들의 모임인 부경회(부산·경남·울산의 퇴직 동인회) 회장으로 다년간 회()를 이끌어 오셨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0, 도서 출판 예사랑), (보통 사람들의 넋두리), 2020, 도서 출판 예사랑), 등의 수필집(隨筆集)도 펴내시며 대학 강의(講義)도 하시면서 환경(環境) 문화연대 부회장으로도 봉사(奉仕)하셨다.

 

우리의 지부장님은 밀양(密陽) 무안(武安)에서 초등과 중등을 거쳐 고등은 부산으로 대학은 서울로 유학(遊學)하셨으며, 지금(2026)은 서울에서 노년(老年)을 편히 지내고 계신다. 만수무강(萬壽無疆) 하시길 기원(祈願)하면서.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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